“단일화가 이뤄지지 않으면 대선 본후보 등록을 하지 않겠다” “단일화 방식에 대한 모든 결정을 국민의힘에 일임했다”
어제 김문수 후보와의 회동 전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밝힌 한덕수 무소속 대선후보의 말이다. 일인지하만인지상(一人之下 萬人之上)이라는 총리직을 그것도 두 번이나 한 인물이, 이제는 대통령직에 도전하겠다는 인물이 내놓은 발언이라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 발언이다.
대한민국 국민의 삶을 책임져야 하는 대통령직을 맡겠다는 자가 그 진퇴를 당 지도부에 전적으로 의지하겠다는 것은 스스로의 무능력과 무책임을 자인하는 것이다. 애초에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결정되고 단일화를 통해 자신을 국민의힘 후보로 밀어주는 시나리오가 아니라면 대선에 나설 생각조차 없었던 것 아닌가. 선거에 이기건 지건 손해 볼 것 없는 장사라 판단한 것일까. 한 나라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선 사람에게 기대할 수 있는 최소한의 도리나 염치는 찾을 수 없다.
국민의힘 지도부나 한덕수 개인에게 이번 대선의 의미는 무엇인가. 세 차례에 걸친 경선을 통해 자당의 공식 대선후보로 선출된 김문수를 끌어내리고, 원외 인사인 한덕수를 후보로 내세운다면 스스로 정통성을 부정하는 것이 된다. 국민의힘 대선 후보 선출과정을 지켜보면서 이들이 과연 대선 승리를 위해 뛰고 있는 것인지, 다른 속셈이 있는 것은 아닌지 진정성에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다. 파렴치한 이들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진 코미디라는 비아냥이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그렇다면 왜 거대 공당에서 이렇게 비상식적인 일이 반복되는 것일까. 탄핵된 대통령도 총리직을 버리고 대선에 나오겠다는 인물도 국민의힘 입장에서는 원외 인물들이다. 그리고 이들 모두는 일평생을 공무원으로 살아온 비정치인이었다. 아무리 인물이 없다 하더라도 총선도 아닌 대선에서 그것도 두 번씩이나 원외의 비정치인을 끌어들여 정권을 잡겠다는 국민의힘의 발상은 상식적 수준에서 납득이 가지 않는다.
헌재에서 대통령 탄핵을 주문한 지 한 달이 지났다. 윤 전 대통령이 탄핵의 운명을 맞게 된 데에는 앞으로 법원 판결을 비롯해 많은 해석이 뒤따르겠지만, 부정할 수 없는 요인 중 하나는 수많은 리스크들을 걸러내지 못한 빈약한 인물 검증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조국에 대한 사랑이나 국민에 대한 존경, 정치인으로서 소명의식이 부족한 인물을 ‘반짝스타’로 만들어 정권잡기에 급급했기 때문이다. 한덕수 후보에게 묻고 싶다. 오랜 시간 조국에 대한 사랑으로 국민들을 존경하며 정치인으로서의 소명의식을 실천해 왔는가. 투철한 신념과 의지로 약자를 위해, 국민을 위해 헌신하고 싸워왔는가. 권모술수에 이골이 난 사악한 정치인들에게 이용당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김문수 후보가 오늘 오전 긴급 기자회견을 했다. 20분 남짓 늦게 회견장에 도착한 김문수 후보는 차분하지만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정당하게 경선을 거친 대선 후보를 당 지도부가 끌어내리려는 시도는 정당민주주의의 안타까운 사태며, 민주주의가 아니라고 말이다. 막후에서 실제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당 지도부를 향한 경고이자 최후통첩이었다.
두 번이나 탄핵된 대통령을 배출한 국민의힘 입장에서는 당의 존폐위기에 직면해 있는 것이 정확한 현실인식일 것이다. 그동안의 과오를 국민들 앞에 진솔하게 사죄하고 거듭날 것을 약속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당장 정권 재창출에 대한 기대가 낮은 것을 인정하더라도 정상적인 경선과정을 통해 건강한 민주정당으로서의 면모를 보여줘야 했다. 그런 의지를 천명해야 했다. 석고대죄의 심정으로 참회의 눈물을 쏟아내도 시원찮을 상황에 지지자마저 등을 돌리게 하는 자중지란의 파열음은 국민의힘의 생명력도 이제 운명을 다했다는 평가가 가능하지 않을까.
‘本立道生(본립도생)’ 위기일수록 기본으로 돌아가라 했다. 명분도 실리도 챙기지 못할 것이 뻔한 한덕수 후보도 늦은 감이 있지만 이제라도 제자리를 찾길 바란다. 정당성 없는 자리다툼에서 실수를 인정하고 명예로운 퇴장을 선택해야 한다. 굳이 막장드라마의 빌런으로 사라질 필요가 있겠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