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이 이제 우리 일상 곳곳에 깊숙이 스며들고 있다. 기술의 발전 속도가 그 어느 때보다 빠른 지금, AI에 대한 이해는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
이에 발맞춰 커뮤니케이션북스는 지난해부터 인공지능총서를 통해 교육, 의료, 산업, 사회, 예술, 철학, 국방, 인문 등 전 분야를 아우르는 AI 담론을 폭넓게 조명해왔다. 인공지능총서는 2025년 8월 20일 현재 430종에 이르렀으며, 올해 말까지 630종 발간을 목표로 하고 있다.
특히 AI 기술의 핵심 이론부터 산업계 쟁점, 일상의 변화까지 다각도로 다루면서 학계와 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또한 인공지능총서 저자들은 최근 ‘AI 3대 강국 실현’을 위한 공동 성명서를 발표하며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기도 했다.
AI가 단순한 기술 혁신을 넘어 인간의 존엄과 지속가능한 미래로 이어지기 위해선 어떤 가치와 기준이 필요할까. 투데이신문은 인공지능총서 저자들이 제시하는 ‘지속가능한 AI 사회’를 향한 제언을 독자들에게 전한다.
2025년 6월, 미국 애니메이션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KPOP Demon Hunters)>가 전 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K-POP 아이돌을 주인공으로 설정한 최초의 해외 제작 뮤지컬 애니메이션이자 K-POP 음악을 핵심 서사 장치로 활용한 이 작품은, 영어라는 익숙함 속에 한국어라는 이질적 리듬을 ‘낯설지만 자연스럽게’ 스며들게 함으로써 상호문화 커뮤니케이션의 정교한 메커니즘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한국어가 ‘감각의 울림'으로 먼저 도달하게 한 이 설계는 콘텐츠가 외국어 교육보다 먼저 침투하는 방식을 여실히 보여준다.
사람들은 새로운 언어를 배우기로 결심하기 전에, 그 언어가 먼저 자기 안에 어떤 울림으로 다가왔는지를 기억한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바로 그 ‘감각적 느낌의 언어’를 전 세계에 전달한 셈이다. 이는 외국어 교육의 방식과 방향, 나아가 외국어 교육의 존재론적 지점에 대해 다시 묻게 한다.
언어는 단지 문법과 어휘의 체계가 아니라 한 사회의 감정과 관계, 의미를 담는 문화적 행위이며 존재를 드러내는 매개이다. 특히 오늘날과 같이 콘텐츠가 언어를 앞질러 도달하는 시대에 외국어 교육은 그 흐름을 수동적으로 뒤따르는 소비적 구조에 머물 것이 아니라 언어와 문화가 어떻게 함께 작동하며 사람의 감각과 태도, 정체성에 침투하는지를 함께 설계하고 안내해야 한다. 한국어도 이제 학습의 대상인 동시에 타자와 나를 잇는 상호문화 소통의 실천장이 되었기 때문이다.
외국어 교육은 단지 기능적인 언어 전달을 넘어, 문화 산업의 흐름을 단단히 뒷받침할 수 있는 철학적 기반 위에 구축되어야 한다. 한국어 학습에 대한 열기가 단발성 소비로 그치지 않으려면, 교육은 언어와 문화를 균형 있게 통합하고 학습자에게 깊이 있는 감각적 경험을 제공해야 한다. 이러한 시대적 흐름을 반영하듯 세종학당재단은 최근 생성형 AI 기반의 ‘i-세종학당’시스템을 발표했고, KBS 한국어진흥원 역시 한국영상대학교와 협력해 AI와 가상인간 기술을 활용한 한국어 교육 자료를 제작하여 국내외 시청자를 대상으로 제공할 계획이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는 기대와 함께 신중한 성찰을 요구한다. 생성형 AI는 언제나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다. 또한 편향된 데이터에 기반한 문화적 오해 가능성, 개인정보 문제, 학습자의 자율성 침해 우려 역시 실재한다. 무엇보다 언어 학습에서 중요한 ‘공동체적 울림'과 ‘정서적 연결'이 기술 중심의 구조 속에서 희석될 가능성도 간과할 수 없다. 따라서 AI는 어디까지나 ‘도구'이며, 그 도구가 무엇을 돕기 위해 존재하는가에 대한 성찰 없이는 교육의 본질이 왜곡될 수 있다.
그럼에도 AI가 반복과 피드백의 기능 차원에 머물지 않고 감각과 공명의 층위에서 작동할 수 있다면, 그것은 오히려 외국어 교육의 본질을 더욱 선명하게 비춰주는 거울이 될 수 있다. 기술이 아무리 정교해져도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외국어 소통의 의미, 곧 문화 간 의사소통의 본질이다. 우리는 ‘기술의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기술을 사용하는 인간의 시대'에 살고 있다. 그렇기에 기술보다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 외국어를 배운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인간이 외국어를 통해 소통한다는 것은 단순한 정보의 교환이 아니라 타자에 대한 이해와 공감, 그리고 나를 낯설게 재인식할 수 있는 정체성의 발견이다.
한국어 교육도 이 지점에서 새로운 사명을 가진다. 단순히 유행을 좇는 외국어가 아니라 타문화로서의 한국문화를 새롭게 바라보고 나의 문화와 언어를 되돌아보게 만드는 성찰의 거울이어야 한다. 언어는 타자를 이해하고 나를 말하게 하며, 나아가 관계를 회복하고 문화를 감각하게 하는 수단이다. 진정한 외국어 교육은 ‘지식 이전의 감정'과 ‘기억 이전의 울림'을 남기는 경험이어야 한다. 본질을 잊지 않는 기술 활용은 도구의 경계를 넘어선다. AI는 인간의 소통 본질을 더욱 뚜렷하게 하는, 시공간과 문화를 뛰어넘는 초연결적 공명의 도구가 될 수 있다.
AI 시대의 한국어 교육은 단지 혁신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본질을 지키는 방식에 대한 질문이다. 소비 이전에 인간에게 건드려지는 그 무언가, 즉 소통의 울림, 존재의 울림, 문화 간 공명의 울림을 교육 안에 어떻게 설계하고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타자와 나, 자문화와 타문화, 언어와 감정, 기술과 인간이 뒤섞이는 이 초연결의 시대에, 외국어로서의 한국어는 더욱 분명하게 묻는다. "너는 누구와, 어떻게 소통하려 하는가?” 그 질문에 제대로 응답할 수 있을 때 한국어는 그저 배우는 외국어가 아니라, 세계와 공명하는 언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학습자의 자아 심연에 울림을 주는 외국어 교육,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AI 시대에 지향해야 할 문화 간 의사소통의 본질이 아닐까.
필자소개
현재 연세대학교 언어정보연구원 연구교수다. 연세대학교에서 “한국어 공손성 인식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어 교육 및 한국학을 전공해 카이스트, 충남대학교, 공주대학교, 전북대학교 등에서 예비 한국어 교사와 외국인 유학생을 대상으로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강의했다. 주로 한국 언어문화, 문화 간 의사소통에서의 문화적 편향성, 공손성을 중심으로 상호문화 의사소통에서의 교수·학습 내용 및 방안에 대해 연구했다. 국제한국언어문화학회에서 신진연구자상을 수상한 바 있으며, 주요 저서 및 논문으로는 《AI와 외국어 말하기》(2025), “가상현실(VR)을 활용한 상호문화 수업 모형 설계와 적용”(2024), “대화형 인공지능(ChatGPT)을 활용한 대화 연습 모형 개발”(2024), “예비 한국어 교사를 위한 PBL 기반 상호문화교육 방안 연구”(2023), “예비 한국어 교사를 위한 상호문화 인식 교육 사례 연구”(2022) 등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