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 전 장관도 “이종섭 내정 이례적”
구심점 잃으며 제 살 길 찾기 분주해
“국민의힘, 특검 수사 대응에 미온적”
【투데이신문 홍기원 기자】 특검 수사가 3개월이 지나면서 윤석열정권의 내각과 대통령실 참모진들의 입이 점차 열리는 분위기다. 각자 살 길을 찾는 분위기 속에 추가로 결정적 증언이 나올지 이목이 쏠리고 있다.
26일 법조계에 따르면 순직해병 수사 방해 및 사건 은폐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이명현 특별검사팀(이하 순직해병 특검팀)은 최근 윤석열정부 시절 전직 장관들을 차례로 소환하며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은 지난 23일과 25일 소환된 데 이어 26일과 오는 28일에도 특검팀에 출석해 소환 조사를 받는다.
이 전 장관은 지난 23일 조사에서 윤 전 대통령이 ‘이렇게 줄줄이 엮으면 어떡하냐’는 취지의 말을 했다고 진술한 바 있다. 다만 이를 지시로 받아들이지는 않았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박진 전 외교부 장관도 지난 23일 순직해병 특검 조사에 출석해 “이종섭 전 장관의 (호주대사)내정이 이례적이었다”라고 진술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어 박 전 장관은 “대통령의 뜻으로 생각했다”라는 취지로 말했지만 대통령실로부터 따로 언질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순직해병 특검팀은 26일 이시원 전 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을 거듭 소환해 조사에 나선다. 이 전 비서관은 지난 7월부터 특검의 조사를 받고 있으며 윤 전 대통령이 채 상병 사건 수사기록 회수와 박정훈 해병대 수사단장의 항명죄 등에 관심을 보였다는 취지의 진술을 한 것으로 보인다.
‘실세 참모’ 김태효 전 차장, VIP 격노 직접 목격 진술해
순직해병 특검팀은 지난 2023년 7월 31일 대통령실 주재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불거진 이른바 ‘VIP격노설’의 실체를 확인하고 윤 전 대통령이 채 상병 사건 수사와 박 대령 항명죄 수사 등에 개입했는지를 들여다 보고 있다. 윤석열정권 대통령실의 실세 참모로 꼽혔던 김태효 전 국가안보실 1차장이 VIP의 격노를 직접 목격했다고 진술하기도 했다.
김 전 차장은 지난 7월 특검팀 소환 조사에서 “윤 전 대통령이 임기훈 전 대통령실 국방비서관으로부터 채 상병 사망 사고 보고를 받고 언성을 높이며 화를 냈다”는 취지로 특검에 진술했다. 문제의 수석비서관회의가 있은 지 2년 만에 윤 전 대통령의 격노를 털어놓은 것이다. 당시 회의에 참석했던 이충면 전 외교비서관, 왕윤종 전 경제안보비서관, 임기훈 전 국방비서관도 VIP 격노설을 인정한 것으로 보인다.
역시 해당 수석비서관회의에 참석한 조태용 전 국가안보실장도 지난 7월 29일 특검팀 조사 과정에서 윤 전 대통령의 격노를 인정하며 조 전 실장과 임 전 비서관만 남아 추가 논의도 했다고 진술했다. 조 전 실장은 회의 석상에서 윤 전 대통령이 이종섭 전 장관에게 전화해 채 상병 조사결과의 문제점을 지적했다는 취지의 진술도 한 것으로 나타났다.
김 전 차장은 지난해 7월 국회 운영위원회에서 윤 전 대통령의 격노에 대해 “화를 내신 적은 없다”면서 “그 주제에 대해서는 제가 아는 바가 없다”고 말한 바 있다. 조 전 실장은 2023년 8월 국회 운영위원회에서 윤 전 대통령의 격노는 없었다면서 채 상병 사망 사고 관련 보고를 했냐는 질의에 “그런 사실이 없다”고 답했다. 특검 조사에서 한 진술이 맞다면 국회에서 위증을 한 셈이다.
12.3 비상계엄 관련 내란·외환 의혹을 수사하는 조은석 특별검사팀(이하 내란 특검팀)은 윤 전 대통령이 언제 처음 비상계엄을 구상한 시점과 계엄 선포 동기, 모의 시기 등도 추적하고 있다. 내란 특검팀은 특히 지난해 3월 삼청동 안가 회동을 집중적으로 수사하며 당시 상황을 재구성한 것으로 보인다.
삼청동 안가 회동에 참석했던 신원식 당시 국방부 장관과 여인형 전 국군방첩사령관은 앞서 국회와 헌법재판소 탄핵심판에서 윤 전 대통령이 ‘비상한 조치’를 언급했다고 밝힌 바 있다. 신 전 장관은 헌재 탄핵심판에 출석해 삼청동 안가 회동에서 “계엄까지는 생각 못했고 어떤 경우라도 적절하지 않다고 의견을 피력했다”라며 김용현 당시 경호처장에게 “(대통령을)유의깊게 잘 모셔라”라고 조언했다고도 했다.
신 전 장관은 12.3비상계엄 상황에서는 국가안보실장을 맡아 계엄 선포 전 국무회의에 참석했다. 또, 정진석 전 비서실장과 함께 합동참모본부 지하 결심지원실에서 회의를 하던 윤 전 대통령을 안내해 집무실로 복귀한 것으로도 알려졌다. 이에 내란 특검팀은 신 전 실장을 상대로 비상계엄 선포 전후 상황과 2차 계엄 모의 의혹 등을 집중 조사했다.
‘호위무사’ 김성훈 전 차장 진술 번복, 尹 재구속 결정타
한편, 윤 전 대통령이 지난 7월 재구속된 배경에는 핵심 측근들의 진술 번복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강의구 전 대통령실 부속실장은 지난 2월 검찰 조사에서는 ‘사후 비상계엄 선포문’의 작성과 폐기 모두 윤 전 대통령에게 보고했다고 진술했지만 특검 조사에서는 입장을 바꿨다. 내란 특검팀은 윤 전 대통령 측 변호인이 입회하자 기존 진술을 번복했다고 보고 있다.
‘윤석열 호위무사’로 불리던 김성훈 전 대통령경호처 차장은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 집행 저지와 관련해 기존 입장을 뒤집어 윤 전 대통령의 지시로 영장 집행을 막았다라고 특검에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내란 특검팀이 청구한 윤 전 대통령 구속영장에는 “총을 갖고 있다는 것을 보여줘라”, “쉽게 볼 수 없어야 비화폰이니 조치해라” 등의 윤 전 대통령의 구체적 발언이 담겼는데 이는 김 전 차장의 증언에 기인한 것으로 여겨진다.
윤 전 대통령 탄핵 반대를 앞장서 주장했던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은 특검 소환 조사에서 결국 말을 바꿨다. 윤 의원은 지난 7월 27일 김건희와 명태균·건진법사 관련 국정농단 및 불법 선거개입 사건 등 진상규명을 위한 민중기 특별검사팀(이하 김건희 특검팀)에 출석해 2022년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 당시 윤 전 대통령의 전화를 받았다고 인정했다.
앞서 공개된 통화 녹취록에서 윤 전 대통령은 정치브로커 명태균씨에게 “김영선이를 좀 해줘라 그랬는데 말이 많네”라며 “상현이(윤 의원)에게 한 번 더 얘기할게. 공관위원장이니까”라고 말했다. 그러나 윤 의원은 그런 요청을 받은 적이 없다고 부인해 왔다.
그러나 윤 의원은 김건희 특검팀 조사에서 2022년 5월 9일 윤 전 대통령에게 김영선 전 의원의 공천을 요구하는 취지의 전화를 받았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윤 의원은 하루 전날인 5월 8일 당시 비서실장이던 고 장제원 전 의원에게도 전화가 와 김영선 전 의원의 공천이 윤석열 당선인의 뜻이라는 말을 들었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윤 의원은 “윤 전 대통령과 전화한 내용을 공관위에는 전달하지 않았다”는 입장으로 전해졌다.
특검 수사가 연장되면서 전 정권 내각인사 혹은 대통령실 인사 중에서 추가로 윤 전 대통령에게 불리한 진술을 할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윤 전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모두 구속된 상황에서 구심점을 잃은 전 정권 인사들이 ‘각자도생’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 소장은 “윤 전 대통령이 무죄로 풀려날 가능성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 특검이 비상계엄과 관련한 핵심인사뿐 아니라 먼지털이식 수사를 하고 있다보니 사실대로 말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더 센 특검법도 통과됐고 계속 입을 다물고 있으면 되려 불이익을 받을 가능성이 켜지고 있기에 진술에 나서는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윤 전 대통령이란 구심점을 잃으면서 대오에서 이탈하는 원심력이 더 크게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엄 소장은 “국민의힘도 당원명부 압수수색은 정당정치에 대한 심각한 훼손으로 볼 수 있는데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라며 “특검 수사 전반에 대해 반대는 하지만 미온적으로 대응하고 있다”라고 내다봤다. 소수야당이 됐다지만 국회에서 107석을 가진 정당치고는 특검 수사에 거세게 싸우지 못하는 모습이라는 뜻이다. 그는 “장동혁 대표 체제가 들어서면서 이재명 대통령의 협치 드라이브에 기대를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여권 내에는 국민의힘은 내란 세력이라는 인식이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다. 이를 간파하지 못하고 초기에 혼선을 빚은 것 같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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