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출처 = 고양여성민우회 홈페이지
<사진출처 = 고양여성민우회 홈페이지>

【투데이신문 김태규 기자】 경찰이 지하철역사에서의 불법촬영을 예방하겠다며 ‘옆으로 서기’ 캠페인을 진행해 비난을 받고 있습니다.

일산동부경찰서는 지난 10일 경기 고양시 정발산역에서 불법촬영 예방 대국민 ‘옆으로 서기’ 캠페인을 시범 진행했습니다.

옆으로 서기 캠페인은 지하철 이용자가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할 때 벽을 등지고 서서 시야각을 확보하고 가해자가 뒤에서 몰래 촬영하지 못하도록 불법촬영을 예방하려는 캠페인입니다.

일산동부서는 “비용이 발생되지 않는 간단한 캠페인으로 지하철 내 불법촬영범죄가 줄어들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이 캠페인은 곧바로 시민들의 비판을 받았습니다. 불법촬영의 원인이 피해자의 옷차림이나 부주의한 태도 때문이라는 ‘성범죄 피해자 유발론’이 반영된 캠페인이기 때문입니다.

고양여성민우회는 캠페인이 시작된 다음날인 11일 정발산역에 설치된 일산동부서의 ‘옆으로 서기’ 캠페인 배너에 이를 비판하는 포스트잇을 붙이고 피켓팅을 하는 퍼포먼스를 진행했습니다.

고양여성민우회는 “(옆으로 서기 캠페인은) 성범죄를 예방하기 위해 짧은 치마를 입고 다니지 말라는 ‘성범죄 피해자 유발론’과 다르지 않다”며 “불법촬영은 가해자가 저지르는 범죄다. 이를 철저히 수사해야 하는 것은 경찰의 의무다”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확보해야 할 것은 시야각이 아니라 경찰의 성인지관점이다”라고 비판했습니다.

수많은 누리꾼들도 ‘옆으로 서기’ 캠페인에 대해 황당하다는 의견을 나타냈습니다. 한 트위터 이용자는 “옆으로 서기 안 하고 불법촬영을 당하면 ‘왜 옆으로 서지 않았느냐’고 피해자 탓을 할 것 같다”고 지적했고, 다른 트위터 이용자는 “‘옆으로 서기’ 캠페인 만든 사람은 징계가 필요하다”고 비난하기도 했습니다.

사진출처 =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사진출처 =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경찰은 과거에도 이와 유사한 내용의 캠페인을 진행해 지적을 받은 바 있습니다.

지난 2015년 서울혜화경찰서에서 서울지하철 4호선 혜화역사 내에 부착한 ‘몰래카메라 주의’ 안내문은 ‘은폐 카메라가 많으므로 카메라가 안 보인다고 방심은 금물’, ‘계단, 에스컬레이터 이용 시 뒤를 가리고 주변을 살피는 습관 필요’ 등의 문구가 담겨 있었습니다.

이에 지하철 이용자들은 해당 안내문에 “몰래 찍는데 어떻게 주의를 하느냐”는 등의 항의 문구를 적어놓기도 했습니다.

누리꾼들도 이에 대해 “불법촬영을 당하지 말라고 주의시키지 말고 불법촬영을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이 맞지 않느냐”고 지적했습니다.

수차례 지적을 받은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경찰은 같은 내용의 캠페인을 진행해 부족한 성인지감수성을 드러낸 것입니다.

<여성신문>의 지난 12일 보도에 따르면 일산동부서는 여성단체와 시민, 누리꾼들의 지적이 잇따르자 내부 논의를 통해 ‘옆으로 서기’ 캠페인을 중단하기로 했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캠페인을 중단하기로 한 배경은 ‘안전상 문제’였습니다. 해당 보도에 따르면 일산동부서는 캠페인 방식에서 안전상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제기돼 중단을 결정했습니다. 이는 비판을 받고 있는 지점과는 다른 이유를 들어 캠페인을 중단하면서 자신들의 잘못을 회피하는 듯한 모습입니다.

다만 여성신문은 일산동부서 생활안전계장이 “홍보물에 여성이 나오거나 캠페인이 여성만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기에 사전에 전문가의 검토를 받지 않았다”며 “앞으로는 여론을 세심히 살펴 시민, 단체 등과 의견을 공유하겠다”고 말했다고 보도했습니다.

범죄를 예방하고 사건 발생 시 철저히 수사해 처벌하는 것은 경찰의 역할입니다. 피해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며 ‘비용이 발생되지 않는 간단한 캠페인’을 고민할 게 아니라, 비용이 들더라도 피해자에게 책임을 묻지 않고 범죄예방 효과를 거둘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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