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뉴얼에 명시된 교통지원 등 이행 안 해
권고 사항에 불과하다는 이유로 외면받아
고위험군에서도 빠진 장애인, 더욱 고립돼
“장애 유형에 맞게 맞춤형 방역 조치 필요”

[사진제공=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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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신문 전유정 기자】 #중증 시각장애인이 홀로 PCR(코로나19 유전자증폭검사) 검사를 받으러 가다 목숨을 잃은 사건이 발생했다. 지난 2월 22일 그는 집에서 불과 2km 떨어져 있는 선별 진료소에 가던 중 50m도 가지 못한 채 쓰러졌다. 주변 시민에 의해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목숨을 잃었다. 그는 평소 장애인의 이동권 보장에 대해 목소리를 내오던 동서울장애인자립생활센터를 설립한 오병철 소장이었다. 

# 서울시에 거주하는 한 장애인 부부는 29개월 자녀의 코로나 확진 판정에도 정부의 어떤 도움도 받지 못했다. 최근 개편된 정부 지침에 따라 장애인은 코로나19 고위험군에서 배제됐기 때문에 이들은 비장애인들과 똑같이 재택 치료를 해야 했다. 부부는 평소 활동 지원을 받던 중증장애인이었지만 자녀가 확진 판정을 받은 후에는 활동 지원사의 도움 없이 생활했다. 먼저 확진 판정을 받은 자녀는 격리 해제, 부부는 재택 치료가 끝나갈 무렵 자녀의 열이 떨어지지 않아 부부는 긴장했고,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 보건소에 연락을 취했지만 속 시원한 답을 받지 못했다. 동네 병원은 자녀가 격리 해제된 상태여서 비대면 진료 대상자가 아니라는 답변만 남겼다. 자녀를 당장 병원에 데려갈 인력이라도 필요했지만 서울시사회서비스원도 긴급 돌봄 지원에 대해 확답하지 못했다.

코로나19 확진자수가 폭증하고 있는 가운데 장애인의 건강과 생명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국민의힘 이종성 의원이 질병관리청 중앙방역대책본부로부터 제출받은 ‘월별 코로나19 확진된 장애인 수’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20년 11월부터 올해 1월까지 코로나19로 사망한 장애인은 315명이다. 같은 기간 코로나19 확진을 받은 장애인은 총 8897명으로 치명률(확진자 대비 사망자 비율)이 3.5%인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해당 기간 동안 전 국민의 코로나19 치명률은 0.81%다.

이렇듯 장애인의 코로나19 치명률은 전 국민의 치명률과 비교했을 때, 무려 4배 이상 높다. 24일 기준 전 국민의 코로나 치명률은 0.13%로 떨어지면서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코로나19 치명률의 격차가 계속해서 벌어지고 있지만, 장애인은 그야말로 무방비 상태에 놓여있다.

현장서는 무용지물인 대응 매뉴얼

비장애인에 비해 장애인은 감염병에 취약할 수 밖에 없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장애인은 손씻기 등 일반적 예방수칙을 이행하기 어렵고, 보조인 등의 일상적 도움이 필요해 사회적 거리두기의 어려움이 있으며 장애인보조기기 사용 및 점자 활용 등에 물리적인 접촉 필요성이 있어 감염 위험이 높다. 감염시 피해는 더욱 심각하며, 의료서비스의 접근도 어렵다.

또 시각정보습득이나 음성의사소통에 제약을 받거나 의미적 소통에 어려움이 있는 경우 충분한 정보 습득 및 이해 부족이 발생할 수 있다. 보행 장애가 있는 경우에는 자력으로 이동이 불가능해 조력자의 도움이 필요하다. 질환이나 사고로 인해 정기적 치료와 처방 등 의료서비스를 필요로 한다.

이 같은 장애인의 특성을 고려한 정책과 대안이 필요하다는 목소리에 따라 보건복지부는 2020년 ‘장애인 대상 감염병 대응 안내서(매뉴얼)’을 발간했고, 2021년에는 추가적인 고려사항을 담아 개정판까지 마련했다.

보건복지부는 해당 매뉴얼을 통해 감염병 상황에서 지자체장이 장애인의 특수한 상황을 고려한 감염병 대응 지원 계획을 설명했다. 구체적으로 정보접근성 제고, 이동서비스 지원, 감염병 예방 및 관리 및 필수 의료지원 강화, 돌봄 공백 방지, 장애인 시설 이용시 감염예방 및 서비스 유지 등의 필요성을 언급하고, 고려사항과 각종 사례 등을 안내했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이러한 지원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으며, 관련 내용에 대해 대다수의 장애인들이나 지자체도 알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에 대해 보건복지부 측은 “장애인 대상 감염병 대응 안내서는 지자체에 내린 권고사항 일 뿐”이라며 이행 의무가 없다는 입장이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등 5개 단체는 지난 2일 성명서를 통해 “장애인 감염병 매뉴얼에 명시된 교통수단 지원의 경우 현장에서는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는데 그 이유로는 지자체별로 지원 체계가 상이하며, 활용할 수 있는 자원이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라며 “이에 대해 보건복지부, 질병관리청, 지자체 등 아무도 책임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장애인차별철폐연대 건강권위원회 박주석 간사는 “장애인 감염병 매뉴얼도 코로나가 시작된 지 일 년 반이 지나서야 겨우 나온 지침서”라고 한탄했다. 그러면서 “보건복지부나 질병관리청은 지자체에 내린 권고사항일 뿐이라고 하고, 지자체는 지침이 내려오지 못해 시행하지 못한다고 하고 있다”라고 안타까워했다.

동서울장애인자립생활센터 주정수 사무국장은 “많은 장애인이 선별 진료소로 이동할 때 지원받을 수 있는 시스템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있어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이동이 어려운 중증장애인들에게만이라도 시스템이 구축되길 바란다”라고 호소했다.

개편된 의료체계, 장애인 고립·소외

정부가 지난 2월 오미크론이 무증상·경증 환자가 다수라는 것을 고려해 방역 및 의료체계를 개편하면서 장애인은 제외해 이들은 더욱 고립, 소외되고 있다.

장애 단체들은 장애인을 고위험군으로 분류해 코로나19 백신 우선 접종과 PCR 검사 대상에 포함시킬 것을 요구했지만, 고위험군 기준은 ‘나이’만으로 축소됐다.

이에 따라 장애인은 PCR 검사 대상에서도 배제돼 비장애인과 똑같이 선제적 검사를 실시 할 수 없게 됐고, 자가검사키트 검사 결과 양성 반응이 나와야 PCR 검사가 가능해졌다. 감염병과 이동에 취약한 장애인에게는 목숨까지 위태롭게 만드는 대응책인 셈이다.

이종성 의원은 “편의시설이 갖춰져 있는 병원들이 많지 않기 때문에 장애인들은 더 어려운 상황”이라며 “장애인들은 우선적으로 PCR 검사를 시행해야 하고, 정부나 지자체가 각 장애 유형에 맞게 맞춤형 방역 조치가 이뤄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연일 최다 확진자 수를 갱신하며 어떠한 도움도 받지 못한 채 피해를 보고 있는 장애인들이 늘어나고 있다. 장애인의 코로나19 고위험군 포함 필요성 대해 계속해서 많은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만큼, 장애인을 위한 현실적이고 체계적인 방안이 마련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질병관리청에 장애인을 고위험군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건의를 계속 해왔지만, 어떤 이유로 배제됐는지는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이어 “장애 단체의 성명서 내용은 아직 확인하지 못했지만, 본 부처에서 건의할 수 있는 사항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대처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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