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이종우 칼럼니스트】 매년 3월이면 각급 학교는 새로운 학기를 시작한다. 지난 3월 2일, 필자가 잠시 집 밖에 나갔다 오니, 동네의 학교의 교문에 “입학을 환영합니다”라는 플래카드가 걸려있었다. 그리고 SNS 곳곳에 자식이 상급 학교에 진학했다는 소식으로 넘쳐났다. 바야흐로 새로운 학기가 시작된 것이다.이제 역사가 된 2020년, 각급 학교는 역사상 없었던 팬데믹 상황을 겪었다. 그리고 맞이한 2021년 1학기, 초중등학교는 1년간의 경험치가 쌓여서 팬데믹 상황에 어느 정도 적응을 한 것 같지만, 전국의 대학은 큰 문제
【투데이신문 이종우 칼럼니스트】 지난 15일 백기완 선생이 별세했다. 향년 88세. 여러 해 동안 심장질환을 앓아왔고, 작년부터 폐렴 증세까지 나타나서 투병해왔다1)고 전해진다. 정치권 전반, 그리고 시민들 사이에서 애도가 이어지고 있다.필자가 “백기완”이라는 이름을 처음 알게 된 것은 백기완 선생이 1987년 제13대 대통령 선거에 후보로 나왔을 때였다. 당시 선거홍보물 속에서 입술을 굳게 다문 백기완 선생의 표정에는 웃음기가 없었다. 그리고 “민중”, “민주”, “대연정”, “친미 사대주의” 같은 단어들이 선거홍보물 속에 적혀있
【투데이신문 이종우 칼럼니스트】 이지함의 호인 “토정(土亭)”이 비결(秘決)에 관한 책, 즉 예언서인 『토정비결(土亭秘訣)』에 가차됐고, 그의 생애 자체에도 신비한 일이 많았다. 이러한 점들 때문에 이지함은 단학(丹學), 즉, 수련과 단약 섭취, 양생(養生)을 중요하게 여기는 도교 일파의 중시조(中始祖)로 평가받는다. 그런데, 그의 생애를 살펴보면 성리학자의 면모도 못지않게 많이 보인다.이지함이 가진 성리학자로서의 면모는 그의 가족 이력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지함의 7대조는 고려 말의 저명한 성리학자 목은 이색(牧隱 李穡, 132
【투데이신문 이종우 칼럼니스트】 아산현감 이지함(李之菡)이 사망하였다. -(중략)- 하루는 그 부친에게 고하기를,“아내의 가문에 길할 기운이 없으니 떠나지 않으면 장차 화가 미칠 것입니다.”하고는, 마침내 가솔들을 이끌고 떠났는데, 그 다음 날 모산수(-이지함의 장인) 집에 화가 일어났다. 그는 사람들을 관찰할 때 그들의 현명함과 부정함, 길함과 흉함을 이따금 먼저 알아맞추곤 했는데, 사람들은 그가 무슨 수로 그렇게 알아맞추는지 아무도 몰랐다. -(중략)- 그는 열흘을 굶고도 견딜 수 있었으며 무더운 여름철에도 물을 마시지 않았다.
【투데이신문 이종우 칼럼니스트】 한번은 우두커니 앉아 혀를 끌끌차며 이렇게 말했다. “십 여년 후에 나라에 큰 변이 있겠구나. 어떻게 하나, 어떻게 하나?” 그러고는 아내와 자식에게 흙짐을 지고 뒷동산을 오르락내리락하게 하여 몸을 단련시켰다. 임진왜란이 날 것을 미리 알았다.1)위의 일화의 주인공은 이지함(李之菡, 1517~1578)이다. 그의 이름에 붙는 “토정(土亭)”은 이지함의 호다. 『선조수정실록』에 따르면, “이지함이 흙으로 언덕을 쌓아 아래로는 굴을 파고 위로는 정사(亭舍)를 지어 스스로 토정(土亭)이라 이름하였다”라고
【투데이신문 이종우 칼럼니스트】 이전 회차에서 성리학자로서의 서경덕의 면모를 소개했다. 서경덕은 당대에 성리학자들 사이에서 많은 논쟁이 오고 갔던 성리학의 우주관인 이기론(理氣論)과 관련한 독특한 시각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유학(儒學)이 최상의 도라는 입장도 피력했다. 그런데, 이러한 성리학자로서의 면모와 다른, 서경덕의 도사로서의 면모도 많이 보인다. 우선, 일화 하나를 소개해보겠다.서경덕이 지리산 유람을 갔을 때다. 최상봉에 오르려고 새벽에 점을 치고선 시종들에게 말했다.“오늘은 이인(異人)을 만나게 될 것이다.”그리고는 -(
【투데이신문 이종우 칼럼니스트】 지난 10월 19일자 칼럼에서 전우치에 대해 소개한 적이 있었다. 그 내용 가운데 “전우치가 화담 서경덕(花潭 徐敬德, 1489-1546) 형제와 도술 대결에서 패배한 뒤 서경덕에게 가르침을 받았다”는 문장이 등장한다. 이것은 소설인 『전우치전』에 등장하는 내용이지만, 전우치도, 서경덕도 실존 인물이고, 도술 대결이 사실은 아닐지라도 최소한 만났거나, 매우 가까운 사이였을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서경덕은 한국 역사에서 매우 독특한 인물로 평가되고 있다.우선 서경덕은 특별한 스승을 두지 않고 혼자 힘으
【투데이신문 이종우 칼럼니스트】 승려 혜민이 한동안 검색어 시장을 장악했을 때가 있었다. 그런데 “혜민”이라는 검색어에 묻혀서 대한불교조계종(이하 조계종이라고 약칭하겠음)의 엄청난 결정 하나가 묻혔다. 조계종에서 멸빈(滅擯: 승적 영구 박탈) 당했던 전 조계종 총무원장 서의현을 복권시키고, 뿐만 아니라 조계종 비구승 최고의 법계이자 ‘존경받는 선지식’인 대종사 후보에 올린 것이 그것이었다.이러한 조계종의 결정이 있자 조계종 내부에서 거센 반발이 이어지고 있다. 대한불교청년회를 비롯한 각종 승려, 재가신도 단체가 서의현의 복권과 대종
【투데이신문 이종우 칼럼니스트】 50년 전인 1970년 11월 13일. 한 청년이 평화시장의 남쪽, 동화시장 계단에서 분신했다. 그의 손에는 이 들려 있었다. 그 청년의 이름은 전태일이었다.전태일 열사는 해방과 대한민국 정부 수립 직후인 1948년 9월 28일 대구에서 태어났다. 전태일 열사의 아버지는 봉제 기술을 가지고 있었고, 그것을 바탕으로 몇 차례 사업을 벌였으나 결국 실패했다. 이로 인해 전태일 열사와 그의 세 동생은 제대로 공부할 기회조차 가질 수 없었고, 결국 가난에서 벗어나 학업을 이어가기 위해 서울로 상
【투데이신문 이종우 칼럼니스트】 2020년 10월 29일 목요일. 이명박이 실형을 선고받았다. 대법원 2부는 10월 29일,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 등 혐의로 기소된 이 전 대통령의 상고심에서 징역 17년과 벌금 130억원, 추징금 57억8000여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이명박은 자동차 부품회사인 다스 회삿돈 약 349억원을 횡령하고, 삼성전자가 대신 내준 다스의 미국 소송비 119억여원을 포함해 모두 163억원 가량의 뇌물을 챙긴 혐의 등으로 재판을 받아왔는데, 이 가운데 뇌물수수 85억여원 혐의와 횡령 246억여원 혐의
【투데이신문 이종우 칼럼니스트】 2009년, 라는 제목의 영화가 상영된 적이 있다. 최동훈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고, 강동원, 임수정, 김윤석, 유해진, 송영창, 김상호 등 당대 유명 주조연 배우가 출연했다. 606만명의 관객을 동원해서 흥행에도 나름 성공한 영화였다.필자가 이 영화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은 우리나라에서 비교적 덜 알려진 도교(道敎)를 소재로 제작된 영화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관심은 도교를 소재로 한 영화가 제작됐다는 것에 대한 반가움으로 바뀌었다. 지금까지 불교나 기독교, 무속을 소재로 한 영화는 다
【투데이신문 이종우 칼럼니스트】 서양 의학과 개신교는 우리나라에 함께 들어왔다. 19세기 유럽과 미국에서 펼쳤던 아시아와 아프리카 지역 개신교 선교 전략은 근대 의학과 교육 등 사회 복지사업을 전면에 내세우는 것이었다. 천주교가 전파되는 과정에서 많은 순교자가 발생했던 전철을 밟지 않겠다는 의도였다. 이로 인해서 19세기 이후 개신교의 전도는 천주교의 희생을 바탕으로 비교적 쉽게 이루어졌다고 평가받는다. 아프리카의 성자(聖者:부처나 보살)로 잘 알려진 슈바이처(Albert Schweitzer, 1875-1965)도 의사이자 선교사,
【투데이신문 이종우 칼럼니스트】 조선시대의 사대부들은 성리학적 세계관으로 무장했다.이로 인해 사대부들은 불교를 억압하거나 비판했다. 불교에 호의적인 사대부들마저 불교를 접할 수 없었다.이 시대에 사대부와 승려는 신분상 상극의 위치에 있었다. 따라서 사대부와 승려는 대등한 위치에 서 있을 수 없었다.사대부가 교류하거나 친분을 맺었던 승려를 ‘방외우(方外友:신분을 떠난 친구)’라고 했는데, 이는 자신들과 이념이나 신분이 다른 승려와 우정을 교환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그러나 유몽인의 불교와 승려를 소재로 한 시에서는 불교를 비판하거나
【투데이신문 이종우 칼럼니스트】 지난 칼럼에서 필자는 유몽인의 전반적인 삶에 대해 소개했다. 유몽인은 정치적 대립이 극에 치달았을 때 중간에 서서 죽임에 이르렀다는 평가가 있다. 즉 유몽인이 북인(北人)이면서 북인과 다르고 서인(西人)에 동조하면서 서인에 동조하지 않았다는 의미다. 그리고 대립은 그 ‘중간’을 용납하지 못한다고 하면서1) 유몽인이 대립의 와중에 중간을 지킨 것처럼 묘사되는 경우가 있다. 이것은 북인이 인목대비의 폐위(廢位)를 주장할 때 여기에 동조하지 않았던 점, 인조반정 이후 조정에 복귀하지 않은 것을 의미할 것이
【투데이신문 이종우 칼럼니스트】 유몽인(柳夢寅, 1559~1623)은 『어우야담(於于野談)』의 저자로 잘 알려진 인물이다. 중급 관리의 자식으로 태어난 유몽인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당대부터 현대 학계에 이르기까지 그 가치를 인정받는 『어우야담』을 보면, 유몽인은 어릴 때부터 뛰어난 문장력을 가지고 있었다. 유몽인은 과거시험에 장원으로 급제, 고속 승진했고 뛰어난 문장력으로 외교 문서 작성을 담당해 명(明)의 사신을 맞이하는 등 외교 업무를 주로 담당했다. 특히 유몽인은 임진왜란 동안 원군(援軍)을 보낸 명과
【투데이신문 이종우 칼럼니스트】 우리가 미디어를 통해 알고 있던 무학 자초의 모습은 어느 날 갑자기 “짠!” 하고 등장해 조선의 건국을 위해 이성계를 보좌하는 모습이었다.또한 태조의 후계를 놓고 왕자들 사이에 권력 다툼이 벌어졌을 때도 자식들이 왕위를 놓고 죽고 죽이는 모습을 바라보며 마음 아파하는 이성계를 다독이고, 최선의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모습이 자주 보였다.그러나 무학 자초가 어떻게 입적(入寂, 죽음을 뜻하는 불교용어) 했는지도 모른 채 드라마가 끝나는 경우가 많았다. 교과서에 등장하고, 드라마에도 중요한 조연의
【투데이신문 이종우 칼럼니스트】 중고등학생 때 필자에게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 대목이 있었다. 바로 “조선시대 과거가 이전 시대와 다르게 능력 위주의 사회로 바뀌었다는 근거가 된다”는 것이었다. 어린 시절 역사 대하드라마를 보면 양반이 노비를 때리고 구박하면서 “무엄하다!”를 외치는 장면을 봤던 필자에게 조선시대가 능력 위주의 사회라는 대목은 납득이 되지 않는 명제였다. 그리고 필자가 대학 시절 우리나라의 관리 선발의 역사를 살펴보고 난 뒤에야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가 갔다.우리나라에서 이른바 ‘국가(國家)’라고 일컬
【투데이신문 이종우 칼럼니스트】 평소대로라면 필자는 원고를 수요일이나 목요일 저녁에는 보냈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번 회차 칼럼을 집필하는 시간이 다가오면서 유난히 글이 잘 풀리지 않는다고 느껴졌다. 그래서, 금요일까지 원고를 미루면서 소위 뭉개(?)고 있던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박원순 서울특별시장의 실종 소식이 들려왔다. 걱정스러운 마음과 ‘혹시?’라는 생각에 글은 더욱 풀리지 않았다. 그리고 결국 불귀(不歸)의 객(客)이 되었다는 참담한 소식이 들려왔다.필자와 박원순 시장과의 인연은 함께 두 차례 정도 팟캐스트를 녹음한 것,
【투데이신문 이종우 칼럼니스트】 1376년 나옹 혜근의 입적 후 무학 자초는 나옹 혜근과 벽암 지공을 추모하는 불사에 참여한 것 외에는 명산과 대찰을 유력했다. 이러던 중 무학 자초는 설봉산 석왕사(釋王寺:북한 강원도 안변군 설봉산에 있는 고려후기에 창건된 사찰)의 토굴에서 은둔 수행을 시작한다.그리고 이곳에서 이성계를 만나 새 왕조를 세우기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무학 자초는 토굴에 숨어서 이름을 감추고 솔잎만 먹으며, 칡 베옷을 입고 수행했다고 전해진다.이것이 이성계를 만나기 9년 전이라고 하는데, 그 유명한 이성계가 서까래를
【투데이신문 이종우 칼럼니스트】 신화(神話)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고대인의 사유나 표상이 반영된 신성한 이야기”라고 나온다. 신화에는 고대인이 가진 우주 전체에 대한 관념과 이 세상이 형성된 과정의 원리가 들어있다. 예를 들어 단군신화 속에는 하늘에 있는 절대적 주재자(主宰者)의 존재, 농업을 주업으로 하는 우리 민족의 산업적 바탕, 한민족이 하늘의 후손이라는 자긍심 등이 나타난다. 오래된 신화일수록 나라와 민족이 형성된 과정과 의미가 나타난다.신화는 역사와 대척점에 있는 것으로 간주된다. 신화는 기록이나 과학으로 실증할 수 없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