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인증제로는 셀 단위 살펴보는 데 한계 있어”
일부 제조사 BMS 정보 제공 거부, 반쪽 정책 우려
업계 “무조건 위험한 것 아냐, 정확한 홍보 필요”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가 발생한 전기차량이 자동차 공업소로 옮겨지고 있다. [사진출처=뉴시]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가 발생한 전기차량이 자동차 공업소로 옮겨지고 있다. [사진출처=뉴시스]

【투데이신문 양우혁 기자】 전기차 화재 사고로 소비자 불안이 높아짐에 따라 정부가 배터리 인증제·이력제 등 다양한 정책을 내놓고 있지만 셀 단위 인증 필요성, 배터리 관리 시스템(BMS) 공개 의무화 등에서 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지난 8월 인천 청라 전기차 화재로 대규모 피해가 발생함에 따라 올해 국정감사에서도 안전 확보를 위한 논의가 주요하게 다뤄질 것으로 전망된다.

5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이하 국토위) 등에 따르면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 마티아스 바이틀 대표가 오는 7일 국감 증인으로 채택됐다. 바이틀 대표는 국회 정무위원회와 행정안전위원회에서도 증인으로 채택됐으며 각 상임위는 지난 8월 발생한 청라 전기차 화재에 대해 추궁할 것으로 예상된다. 

국토위 소속 한 의원실 관계자는 “소비자 입장에서는 화재 사고가 나면 조사가 빨리 이뤄져 보상이라도 받아야 하는데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사후 조치가 아닌, 사전에 예방할 수 있는 방향으로 논의를 생각 중이다”라고 말했다. 

앞서 지난 8월 1일 인천 청라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 주차됐던 벤츠 EQE 350 차량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이 화재로 인근 차량 42대가 전소됐으며 800대 이상의 차량이 크고 작은 피해를 입었다. 아파트 주민 20여명도 연기를 흡입해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다른 주민들은 분진 및 누수 피해로 대피소 생활을 하기도 했다. 

당시 사고로 인해 전기차 공포가 확산되자 자동차 업계는 배터리 제조사 공개, 무상점검 등 소비자 불안을 잠재우기 위한 조치에 나섰다. 정부 역시 지난달 초 ‘전기차 화재 안전관리 대책’을 발표하며 대응책을 마련했다. 

먼저 정부는 당초 내년 2월에 시행할 예정이던 배터리 인증제를 10월로 앞당겨 시범사업을 실시하기로 했다. 이와 함께 기존에 공개하던 배터리 용량, 정격전압, 최고 출력 등의 정보에 더해 셀 제조사, 형태, 주요 원료 등을 추가할 계획이다. 

아울러 정부는 BMS 고도화 및 소비자 사용 활성화도 지원할 예정이며 내년 2월부터는 배터리의 생산, 유통, 관리, 폐기, 재활용 등 전체 라이프사이클을 데이터화 해 관리하는 배터리 이력제도 도입할 방침이다. 

하지만 전문가들과 정치권에서는 정부의 정책만으로는 전기차 안전성을 충분히 확보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먼저 배터리 인증과 관련해서는, 셀이 아닌 팩 단위 인증이라는 점에서 우려가 제기된다. 배터리 팩은 셀 단위로 구성되는데, 다수의 화재가 셀 불량 및 충격으로 인한 단락에서 발생하는 만큼 관련 정밀 검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대림대학교 미래자동차공학부 김필수 교수는 “배터리 인증제로는 셀 단위까지 살펴보는 데 한계가 있다. 배터리는 불이 날 경우 원인을 알 수 없는 경우가 많은데 제조 단계에서 셀 단위 전수검사를 하면 미리 걸러낼 수 있다”며 “종합대책에선 충전율 제어, 배터리 셀 전수검사 등의 내용이 빠졌다. ‘앙꼬 없는 찐빵’ 같은 느낌이다. 종합대책이 잘 이뤄지고는 있으나 세부적으로 보완이 됐으면 한다”고 조언했다. 

BMS 기술 공개 의무화 필요성에 대한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BMS는 전기차 배터리의 과충전, 과방전, 과전류 등 다양한 요소를 센서를 통해 측정해 ‘배터리의 두뇌’라고 불린다. 이상 징후 감지 시에는 차량을 제어하고 이용자에게도 알려주며 필요할 경우 소방당국에 위험 상황을 자동으로 통보한다. 

이처럼 전기차 배터리 기술 진단 및 검증을 위해서는 BMS 정보가 필요하지만 국내에서 전기차를 판매하는 제조사 중 일부는 이를 공개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국토위 소속 한 의원실 관계자는 “소비자보다 기업 논리가 강한 한국에서 강제성을 보이는 BMS 공개 의무화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본다”고 우려하기도 했다.

하지만 BMS 정보 없이는 배터리 인증제 및 이력제도 반쪽짜리에 그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만큼 제도 보완에 대한 필요성은 더욱 강조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 청라 전기차 화재 사건에서도 BMS가 불에 타버려 정확한 원인 파악과 책임 소재 판단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이다. 

김필수 교수는 이와 관련해서도 “BMS가 화재로 인해 불타버리게 될 경우, 원인 불명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BMS 공개 의무화를 통해 그런 문제를 어느 정도 보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부는 BMS 정보를 공개하는 제조사에 1대당 30만원의 보조금을 추가 지원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지만 전기차 업계는 기술 유출을 우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지난 ‘전기차 화재 안전관리 대책’ 발표 자리에서도 보조금 상향 지급이나 BMS 정보 공개 의무화 계획에 대한 질의가 나오기도 했다. 당시 오일영 환경부 대기환경정책관은 “연말까지 지침을 개정할 계획이다. 현재 강화된 안전대책을 먼저 고려하고 추가로 필요한 부분을 검토할 것”이라고 답변한 바 있다. 

전기차 제조사들은 정부의 정책과 전문가 및 정치권의 의견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피하는 분위기다. 다만 한 업계 관계자는 “전기차 공포가 지속되고 있지만 배터리가 무조건 화재의 위험성이 있는 것은 아니다”라며 “전기차 배터리에 대한 보다 정확한 정보가 좀 더 홍보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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