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숨걸고 연애해야 하는 사회
한국에 사는 여성들에게 폭력이나 살인을 당할 가능성을 가장 높이는 행동은 남성과 연애를 하거나 결혼을 하는 것이다. 말장난이거나 과장이 아니다. 통계가 말해주는 실제 상황이다. 어떤 사람을 만나고 싶냐는 질문에, 그저 ‘나에게 폭력을 쓰지 않을 것 같은 남성’을 찾는다는 답변을 하는 여성들이 많을 정도다. 연애를 할 때 폭력을 경험할 수도 있다는 가정을 배제할 수 없고 이별을 할 때도 폭력을 두려워하며 ‘안전이별’에 대한 정보를 찾아봐야만 하는 세상이다. 젠더 불평등이 공고한 사회에서 연애란 자신을 위험에 처하게 할지도 모르는 일이 돼버렸다. 데이트폭력과 가정폭력처럼 친밀한 관계에서 일어나는 폭력이 젠더에 기반한 폭력이라는 구조적인 문제를 외면하고 해결할 의지를 조금도 보여주지 않은 국가가 만들어낸 처참한 결과다. 계속해 친밀한 관계에서의 폭력이 일어나고 있고 이로 인한 상해, 살인이 이어지고 있지만 여전히 이 국가는 구조를 변화시킬 생각도 없을뿐더러, 최소한의 모든 젠더폭력 피해자를 지원하는 것과 성평등교육을 의무화하는 것조차 스스로 포기했다.
젠더폭력을 방치하는 입법부
2018년, 포괄적으로 젠더폭력을 방지하기 위한 기본법이 처음 제정됐다. 그러나 성소수자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극우 정치인들 사이 ‘젠더’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는 것이 암묵적인 미덕이 된 상황에서 ‘젠더에 기반한 폭력’이라는 용어를 삭제했다. 젠더권력(남성권력과 시스헤테로권력)이 만들고 유지하고 있는 폭력의 문제들이 개별적인 사례가 아니라, 성별이분법에 의한 지정성별 그리고 성별정체성과 성적지향에 의한 권력과 그로 인한 차별이 만들어내는 사회구조에 기반하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는 개념인 ‘젠더에 기반한 폭력’을 삭제한다는 것은 불평등한 젠더구조를 외면하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신 ‘성별에 기반한 여성에 대한 폭력’이라는, 젠더폭력을 협소하게 만드는 용어로 법안은 통과됐다. 이로 인해, 지정성별 여성에 포함되지 않는 다양한 젠더폭력의 피해자들을 포함하지 못하며 피해자를 선별하게 만들었다. 젠더폭력이 구조적인 문제에 기반함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성평등교육의 의무화가 포함돼 있던 원안 역시 삭제됐다. 젠더폭력은 개별의 문제가 아니며, 운이 나쁘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가 아니다. N번방 사건이나, 반복되고 있는 친밀한 관계에서의 폭력과 살인사건은 차별이 공고한 사회 구조가 만들어내고 방임한 결과 일어나고 있는 구조적 억압이며 폭력이고, 참사다. 이러한 누더기 법은 데이트폭력을 포함한 젠더폭력의 근본적인 원인이 되는 구조를 변화시킬 수도, 여성이 안전한 사회를 만들 수도 없다.
젠더폭력을 문제로 여기지 않는 사법부
데이트 폭력의 신고건수는 매년 증가하고 있으며, 억울한 죽음 앞에 많은 사람들이 함께 분노하고 있다. 하지만 성인지감수성은커녕 남성카르텔과 특권의식이 공고한 사법부의 생각은 다른 것처럼 보인다. 가해자가 초범이라는 이유로, 심신미약을 이유로, 반성을 하고 있다는 이유로, 심지어 의대생이라는 이유 등 다양한 근거(용서해 주어야 하는 이유)를 통해 제대로 된 처벌이 이뤄지지 않는 사건은 수도 없이 많다. 피해자가 울분을 터뜨리면서 사건을 공론화하면 ‘사실적시 명예훼손’으로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고 처벌까지 받게 되는, 자신이 경험한 피해 사실조차 호소할 수 없는 구조인 것이 현실이다. 사실적시 명예훼손으로 처벌하는 법은 UN에서도 정치적 시민적 권리를 크게 침해한다는 이유로 폐지가 권고되고 있으며 존치하는 국가도 매우 드물다. 그러나 한국은, 젠더불평등을 해결하기 위한 구조적 변화를 만들 의지 없는 국가에 의해 젠더폭력의 피해자가 되고, 피해를 호소함으로써 사실적시 명예훼손을 하는 ‘가해자’가 돼 법적 처분을 기다려야 한다.
남자의 뇌와 여자의 뇌는 다르다는 교육부
법을 만들거나 다루는 정부부처만의 문제가 아니다. 데이트폭력을 비롯해 젠더폭력은 교차하는 권력의 불평등과 이로 인한 차별에 의해 발생하기 쉽다. 그렇다면 교육행정을 총괄하는 교육부는 자신의 역할을 인지하고, 다름을 인정하고 다양성을 존중할 수 있는 차별과 폭력에 저항하고 반대하는 주체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교육을 해야 한다. 하지만 그와 반대로 성별이분법적이고 성역할고정관념적, 시대착오적인 사고방식으로 젠더폭력 발생 시 피해자를 비난할 수 있게 하는 성교육을 ‘국가수준의 학교성교육 표준안’이라는 이름으로 제시하는 것이 현실이다. 한 국가의 공교육을 주관하는 기관이 나서서 남자의 뇌와 여자의 뇌가 다르며, 성폭력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여성이 조심해야 한다는 방식의 교육(피해자유발론)을 성교육의 원칙으로 제시하면 사회가 변화되기 어렵다. 데이트폭력이 왜 일어나는지 근본적인 문제들을 살피다 보면 성별이분법과, 수동적인 그리고 성적인 대상이 되는 여성 그리고 성적 욕망의 주체로서의 남성이라는 성별고정관념, 이로인한 성차별의 고착화, 이를 자양분으로 삼는 젠더폭력을 내면화하는 사회화 과정이 있다. 여성을 대상화하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 그리고 디지털 사회에서 더욱 용이해졌고 이로 인해 여성 대상화의 사회적 용인과 묵인이 반복되는 경험이 이어진다. 젠더폭력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가부장제/자본주의 사회가 공고히 유지시키고 있는 ‘강간문화’의 토양을 갈아엎어야 한다. 여기에서 교육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그러나 교육부는 시대착오적인 성교육표준안을 만들어놓고도 6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사과나 폐기를 하지 않고 있다.
이런 사회에서 사는 우리, 무엇을 해야 할까
한국사회에 사는 여성들이 등하교길/출퇴근길, 공공화장실, 밤 길거리 등 일상적인 공간에서 범죄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며 산다는 것, 친밀한 관계에서조차 폭력을 걱정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은 참 슬픈 일이다. 이러한 사회구조를 공고하게 유지하는 권력들이 여전히 흔들림 없이 견고한 현실 속에서 변화를 기대한다는 것이 마치 요원한 일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언제나 더 나은 삶, 정의, 사회의 진보를 갈구한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으로 조금씩 나아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어 보이지만 많은 것이 변화했고, 앞으로도 우리는 많은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한 명 한 명의 힘이 미약해 보일지라도 개개인들의 노력과 연대의 힘으로 우리는 변화를 만들어 왔다. 그래서 우리는 구조의 변화를 요구하는 동시에 자신을 해방시켜 나가야 한다. 젠더불평등을 해체하는 구조적인 변화를 만들어 낼 것을 국가에 지속적으로 요구하는 동시에, 사랑을 충분한 근거로 삼거나 자신을 의심하지 않고 자신을 가장 나답게 살 수 있도록 돕는 선택을 할 수 있었으면 한다. 이미 성평등한 사회가 온 것처럼 살아야 한다. 사회 구조의 변화 없이 개인이 조심한다고 폭력을 온전히 예방하기란 불가능한 일이지만, ‘자신을 가장 나답게 살 수 있도록 하는 선택’을 하는데 있어 참고할만한 몇 가지의 가이드를 제안해보고자 한다.
나는 너의 소유가 아니다
“넌 내꺼야”와 같은 말로 다른 사람을 자신의 소유물처럼 생각하고 통제하려고 하는 사고방식이 익숙한 사람들이 있다. 이는 상대방을 나와 같은 주체로서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소유한 ‘것’이자 자신을 만족시키기 위한 ‘무엇’으로 위치 지운다. 나의 외모, 생각, 관계, 삶을 조정하려 한다면 ‘나는 너의 소유가 아니다’라는 점을 확실하게 인지시키거나, 관계 맺기를 중단해도 좋다고 생각한다. 나를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동할 수 있는 인격을 가진 한 명의 사람으로 인정하며 동등한 사람으로 존중하는 태도가 관계 맺기의 기본이다. 성역할고정관념을 강화하는 메시지인 ‘순종하는 여성’은 여성을 동등한 인간으로 보지 않는데서 등장하는 표현이다. 자신이 원하는 대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존재로 만들고자 하지는 않는지 살펴봐야 한다. 상대방이 ‘내가 지금 너에게 내가 원하는 것을 하겠어. 너는 거부할 수 없어’와 같은 방식으로 나온다면 빨리 헤어지는 게 좋다. 이별조차 위험할 것 같다면 주변 사람들에게 상황을 알려두고 도움을 구해놓는다든지 미리 안전을 확보해야 한다.
사랑과 폭력은 양립하지 않는다
친밀한 관계에서 일어나는 폭력은 대부분 사랑을 빙자한다. 가정에서 주양육자가 피양육자를 향해 폭력을 사용하고도 ‘너를 위해서 하는 말이야’라는 표현을 사용한다든가, 남자아이가 여자아이를 괴롭히면 ‘널 좋아해서 그래’와 같은 이상한 근거를 제시한다. 사랑과 폭력은 양립하지 않는다. 그러나 친밀한 관계, 특히 신뢰하는 사람으로부터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통제를 경험하게 되면 폭력을 폭력으로 인지하지 못하게 된다. 이는 나의 생각과 판단을 의심하고 나를 통제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의존하게 되는 ‘가스라이팅’을 쉽게 당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든다. 데이트 상대가 사랑을 빙자한 폭력을 사용한다면 그 관계는 중단하는 것이 좋다.
폭력을 당하고 자기반성과 측은지심을 하지 않는다
폭력을 행사한 뒤 자신의 폭력행위에 대해 사과는 하지만, 지속적으로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한 사람과 일상적으로 친밀한 관계에 있으면, 폭력을 당하면서도 상대의 맥락과 마음을 살피면서 안쓰러움을 갖게되는 경우가 있다. 명백한 폭력을 사용하더라도 ‘내가 그 사람의 심경을 잘못 건드려서 그래’, ‘내가 약속을 안 지켜서 그래’, ‘나에게도 잘못이 있어’ 등의 생각을 하기도 한다. 친밀한 관계에서의 폭력은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 특성 때문에, 폭력이라는 행위 앞에서 단호해지지 않으면 그 폭력을 지속될 수밖에 없다.
데이트폭력의 징후로서 대표적으로 제시되는 통제와 구속을 하는 사람에게도 “저 사람이 질투가 많아서 그래”, “내가 불안하게 해서 집착하는 거야”, “저 사람이 날 많이 아껴서 그래”, “저 사람이 날 가끔 때리긴 하지만 날 정말 많이 사랑해. 평소에는 잘해주잖아”라는 식으로 면죄부를 준다. 이러한 관계에서 자기반성과 측은지심은 결코 긍정적으로 작용하지 않는다. 불평등한 관계가 지속되게 하는데 도움이 될 뿐이다. 이때는 자신이 정말 원하는 관계, 원하는 삶, 원하는 성관계가 무엇인지 생각해보아야 한다. 사랑은 일방향이 아닌 서로 돌보고 의지하며 보살피는 관계다.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상대가 무엇을 원하는지, 우리는 무엇을 원하는지에 대해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자신의 삶을 더 행복하게, 상대방이 더 행복하게, 서로의 삶이 더 충만해지는 관계를 만드는 것이 좋다.
폭력을 행사하지 않고 폭력에 반대하는 주체로
앞서 반복하여 강조했듯 데이트폭력은 구조의 문제다. 구조의 변화가 일어나지 않은 상태에서 변화하지 않은 개인을 변화시키는 것은 보다 직접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폭력이 없고 서로 존중하는 평등한 관계를 만들고자 한다면, 애인과 함께 성교육/성평등교육을 찾아 들어보는 것도 좋다. 아직 국가가 제대로 된 교육을 제공하지 않는다면 자신이 직접 찾아 나설 수밖에 없다. 한국다양성연구소를 비롯해서 온라인으로 어느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성교육/성평등 교육을 무료로 제공하고 있는 단체들이 있다. 이를 통해 평등한 관계를 맺는 법을 함께 배우며 친밀한 관계를 시작하는 것도 방법이다. 이를 통해서 그저 ‘나는 여자를 때리지 않아’ 정도의 수준으로 폭력을 행사하지 않는 개인인 것에 만족하는 것을 넘어 폭력에 반대하고 평등을 만들어가는 주체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안전한 연애와 이별은 가능할까?
시작할 때의 질문을 다시 던져본다. 안전한 연애와 이별은 가능할까? 모든 사회문제는 두 가지가 동시에 일어나야 해결이 가능하다. 하나는 인식의 향상과 또 다른 하나는 사회구조의 변화이다. 성평등한 사회도 사회구조적인 변화와 함께 교육의 변화를 강력하게 추진해 나아간다면 가능하다. 물론 지금의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일처럼 여겨지기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사회에서 살아야 하고 지금 이대로 계속 살 수 없기 때문에 변화를 만들어가야 한다. 젠더폭력이 사라지는 사회를 위해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은 모두를 위한 성교육이다. 제대로 된 성교육/성평등교육 없이는 젠더폭력이 지속되는 문화를 결코 변화시킬 수 없다. 한편에서 공교육의 변화를 만들어냄과 동시에 제대로 된 성교육/성평등교육을 의무화를 법적으로 명시하는 제도의 변화가 동시에 이어져야 한다. 구조적인 변화를 만들지 않으면서 희망을 말한다는 것은 누군가에게 고문이다.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우리에게는 언제 어디서든 그리고 어떤 관계 속에서든 안전할 권리, 친밀한 관계에서의 폭력을 당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 안전한 연애와 이별이 가능한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우리는 피해자가 스스로 조심해야 하는 ‘예방’ 따위가 아닌 젠더폭력을 끝장낼 성평등교육과 사회구조의 변화를 요구해야 한다.
●김지학 소장은?
- 한국다양성연구소 소장
-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이사
- 청소년성소수자위기지원센터 띵동 운영위원
- 대한성학회 이사
- 사회복지법인 프리웰 사외이사
- 서울예술대학교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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