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흐름과 관계없이 유행을 타지 않고 오래도록 사랑받는 곡들엔 그만의 이유가 있다. 귓가에 속삭이는 듯한 멜로디에 마음을 대변한 가사는 누구나 공감할 만한 감성으로 완성돼 짙은 울림을 남긴다. 주옥같은 노래들은 많은 이들로부터 계속해서 불리며 꺼지지 않는 생명력을 부여받는다. 추억의 명곡이 눈앞에 생동하는 장면들로 펼쳐지는 순간, 심장은 더 빠르게 뛰기 시작한다. 대한민국 대표 창작 뮤지컬 ‘그날들’ 이야기다.
뮤지컬 ‘그날들’이 돌아왔다. 2013년 초연 이후 올해 다섯 번째 시즌을 맞이한 작품은 지난 11월 13일부터 2021년 2월 7일까지 충무아트센터에서 상연될 예정이었다. 개막일에는 슈퍼스타 펭수의 ‘그날들’ 연습실 방문 에피소드가 유튜브 ‘자이언트 펭TV’ 채널에 공개되며 눈길을 끌기도 했다. 하지만 12월 6일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 격상이 확정됨에 따라 8일 공연부터 오는 27일 공연까지의 공연 운영은 잠시 중단된 상태다.
장유정 연출과 장소영 음악감독이 함께한 뮤지컬 ‘그날들’은 시즌을 거듭해오는 동안 한국뮤지컬대상·예그린어워드 등 각종 뮤지컬 시상식 11개 부문에서 수상하며 마니아들의 사랑을 톡톡히 받았다. 故 김광석의 명곡들이 담긴 주크박스 뮤지컬로 ‘그날들’이란 작품 제목 역시 그의 곡에서 따왔다. “잊어야 한다면 잊혀지면 좋겠다”던 노랫말이 불리는 순간, 왠지 모를 뭉클함에 가슴이 저린 기분마저 든다. ‘서른 즈음에’, ‘먼지가 되어’, ‘이등병의 편지’는 김광석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요즘 세대들에게도 꽤 익숙하게 들릴 만한 노래다.
매 시즌 주연 캐스팅 역시 눈길을 끈다. 이번에는 정학 역에 유준상·이건명·정성화·민우혁, 무영 역에는 온주완·조형균·양요섭·인성, 그녀 역에 루나·방민아·효은이 각각 배역을 맡아 개성과 연륜이 어우러진 무대를 선보인다.
청와대 경호실을 배경으로 펼쳐진 이야기는 20년의 세월을 넘나들며 과거와 현재의 연결고리를 찾아간다. 철두철미한 원칙주의자로 ‘만년 2등’이란 꼬리표를 달고 살지만 누구보다 강한 책임감을 지닌 정학. 정학과 달리 자유롭고 재치있는 성격을 지닌 로맨티스트 경호원 동기 무영과 베일에 쌓인 채 상부의 보호와 위협을 동시에 받는 그녀를 중심으로 펼쳐진 1992년의 실종 사건은 2012년 한·중수교 20주년 기념 음악회 직전, 경호원과 함께 갑작스럽게 사라진 영애 하나를 찾기 위해 애쓰는 과정과 묘한 접점을 갖는다. 그런 가운데 지켜주지 못한 사람들을 추억하며 느끼는 안타까움, 풀리지 못한 채 쌓여만 가는 오해, 그리고 위기 속에서 피어난 사랑과 우정이 잔잔한 감동을 선사한다.
뮤지컬 ‘그날들’의 강점 중 하나는 바로 다양한 연령층의 관객을 아우를 수 있다는 데 있다.
실제 공연장에는 다른 뮤지컬에 비해 연령대가 비교적 높은 관객들이 많았다. 또 가족 단위로 공연장을 찾은 경우도 상당수 눈에 띄었다. 관람일이 주말이었다는 사실을 감안해도 확실히 조금 다른 분위기였다. QR코드 체크인부터 체온 측정까지, 이제는 너무나 달라진 입장 문화에 조금은 당황하는 듯했으나 문진표 작성 방법을 천천히 확인해 가며 공연 시작을 기다리는 모습엔 한껏 부푼 기대감이 엿보이기도 했다.
인기 대중음악을 하나로 연결할 구심점을 찾아 이야기로 엮어내는 사이, 관객들의 웃음을 유발하는 지점도 곳곳에 배치됐다. 간간이 들려온 객석발 웃음소리는 오랜만에 모두 함께 같은 공간에서 즐거운 마음으로 공연을 즐기고 있음을 다시금 확인한 기분이 들어 새삼 반가웠다.
볼거리 또한 가득하다. 진지한 분위기 속에 역동적으로 펼쳐지는 특공 무술과 아찔한 레펠 신 등은 청와대 경호원 생활을 더욱 실감나게 보여준다. 회전하는 무대 전환과 흔들리는 실 커튼, 빛이 투영된 스크린, 상하좌우로 움직이는 거대 벽 세트도 마찬가지다. 쉴 틈 없이 전환된 무대 위에 펼쳐진 화려한 군무, 일사불란한 대형 변화에 관객들은 잠시도 눈을 뗄 수 없을 것이다.
-네이버 오디오클립 ‘최윤영의 Musical Pre:view 공연을 말하다’ 크리에이터
-클래식, 콘서트 등 문화예술공연 전문 MC
- 미디어 트레이닝 및 인터뷰, 스피치 커뮤니케이션 전문 강사
- 인천국제공항 아나운서, 경인방송 FM 리포터
이처럼 뮤지컬 ‘그날들’은 두루두루 사랑받을 만한 뮤지컬이다. 쉽게 시도되기 어려운 장르의 뮤지컬을 한국적인 감성으로 창작해 주크박스 뮤지컬의 대표작으로 자리하기까지 결코 쉬운 작업은 아니었을 것이다. 김광석의 음악들로 이뤄진 작품이란 울타리 안에서 익숙한 듯 참신한 소재를 발굴해 비교적 자연스럽게 풀어낸 것이 인상 깊다. 편곡도 새롭다. 다만 장면에 맞춰 곡 삽입을 하려다 보니 일부 넘버의 경우 원곡이 가진 무게감이나 특유의 감성을 간직하지 못한 채 단편적으로 활용된 점엔 적잖은 아쉬움이 남는다. 또, 극 중 어린이날 기념식을 위해 갖가지 인형 탈을 쓴 배우들이 등장해 춤을 추는 장면은 분위기를 환기하는 역할을 톡톡히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소 이질적인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또다시 찾아온 위기의 순간. 어느새 변해버린 일상에 적응하기 시작한 지 벌써 1년에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외로움이 친구가 된 지금도 아름다운 노래는 변함없이 우리 곁에 남았다. 당장은 공연장을 찾기 어려워진 요즘, 뮤지컬 ‘그날들’과 직접 마주할 그 날을 기다리며 작품 속 음악들과 먼저 만나보는 건 어떨까. 원곡과 더불어 새롭게 편곡된 넘버를 비교해 보는 즐거움, 장면마다 등장하는 곡들을 하나씩 맞춰보는 재미를 기대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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