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날 때부터 얼굴을 뒤덮은 혈관종으로 인한 안면장애
평범한 일상뿐만 아니라 예술인으로서 꿈까지 갉아먹어
엎친 데 덮친 격, 갑작스러운 뇌전증으로 두개 장애 안아
장애 원망하게 만든 세상이 가장 원망스럽고 안타까울 뿐

우리나라는 전형적인 집단주의 성향이 강한 사회라고 평가된다. ‘나’만큼이나 ‘우리’가 중요한 사회 분위기 속에 집단에 들지 못하는 소수의 삶은 바늘 가는 데 실 따라가듯, 차별과 배제가 당연하게 뒤따른다.

아이러니하게도 소수집단 안에도 또 다른 소수는 존재한다. ‘소수장애인’도 그중 한 집단이다. 대표적인 소수장애인인 신장장애, 심장장애, 간장애, 호흡기장애, 장루·요루장애, 뇌전증 등 내부기관장애인과 더불어 언어장애, 안면장애 등 소수장애인은 전체 장애 인구의 10%에도 채 미치지 못한다. 장애대중에 속하지 못하는 이들은 각종 복지정책으로부터 역차별을 당할 뿐만 아니라 장애를 장애로 봐주지 않는 또 다른 편견과 무관심 속에 살아간다.

본보는 장애 대중과는 또 다른 소수장애인의 일상적 어려움을 시작으로 사회적 편견, 정책 차별 등을 조명해 보는 [소외된 이들, 소수장애인]을 기획했다. 소수장애인들의 삶을 통해 그동안 모르고 지냈던 우리 사회의 ‘차별 속 차별’의 실상을 들여다보자. 

안면장애·뇌전증 심보준씨 ⓒ투데이신문<br>
안면장애·뇌전증 심보준씨 ⓒ투데이신문

【투데이신문 전소영 기자】 눈이 크거나 작거나, 코가 높거나 낮거나, 입술이 두껍거나 얇거나, 세상 사람들은 모두 각기 다른 특징이 있는 생김새로 살아간다. 나와 생김새가 다르다고 해서, 혹은 내가 다른 사람과 다르게 생겼다고 해서 관심을 주고 받을 경험이 살면서 몇번이나 있을까. 누구나 다른 각기 다른 얼굴로 살아가는 것이 당연한 세상의 이치임에도 불구하고 뮤지컬 배우이자 가수 심보준(37)씨는 평생을 외모 때문에 원하지 않는 관심을 받으며 살아왔다. 

보준씨 왼쪽 얼굴에는 종양덩어리가 깊게 뿌리내리고 있다. 그에게는 얼굴의 절반을 집어 삼킨 종양덩어리와 함께 ‘안면장애’라는 수식어가 한평생 따라 붙었다. 겨우 주먹만한 종양일 뿐인데, 그것이 주는 인생의 무게는 너무나 무거웠다. 예술인이라는 꿈도, 사랑하는 사람과의 새출발도, 그저 남들만큼만 벌어 먹고 살겠다는 최소한의 바람도 안면장애 탓에 쉽사리 허락하지 않았다. 

세상이 아무리 호락호락하지 않다지만, 그에게는 더욱 가혹했다. 어느날 느닷없이 ‘뇌전증’이라는 불청객이 찾아 왔고, 그와 가족의 인생을 송두리째 뒤흔들었다. 그는 한쪽 시력이 망가지고, 인지능력은 저하됐으며, 약간의 틱장애 증세도 보이고 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치료로 조절할 수 있다고는 하나, 평생 약을 복용해야 하는 리스크를 안게 됐다.  

장애 중에서도 소수장애, 그것도 두개의 소수장애를 안고 살아가야 하는 보준씨. 소수자 중에 소수자인 그는 자신의 장애를 원망하면서도, 장애를 원망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도록 만든 세상을 탓했다.  

ⓒ심보준씨 유튜브 캡처
ⓒ심보준씨 유튜브 캡처

“안면장애 뮤지컬 배우 심보준씨를 모십니다.”

안면장애는 넓적한 흉터, 색소침착, 조직의 비후나 함몰 등으로 노출된 안면부의 45% 이상이 변형된 경우, 코 형태의 1/3 이상이 없어진 경우 등이라고 정의된다. 태어날 때부터 변형이 있는 ‘선천적 장애’와 사고 등으로 변형이 생긴 ‘후천적 장애’가 있는데 보준씨는 전자에 해당된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혈관종을 가지고 있었다. 팔이나 다리 등 다른 신체에 있었다면 수술이 가능했을지 모르겠지만 종양 덩어리는 야속하게도 보준씨의 왼쪽 얼굴에 자리 잡았다.

그럼에도 보준씨는 어린 시절부터 스스로 활발하길 바랐다. 하지만 남다른 외모는 늘 손가락질 대상이 됐고 그를 주눅 들게 만들었다. 철부지 아이들은 ‘쟤 얼굴 왜저래’, ‘얼굴이 이상해’라는 말로 그를 놀려댔다. 얼굴에 침을 뱉거나 도시락을 발로 차는 아이들도 있었다. 소위 빵셔틀도 그의 몫이었고, 구타당하기도 했다.

보준씨는 밖에서의 차별도 차별이지만, 집에서 가족들의 차별이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놀랍게도 그는 태어나 가장 먼저 차별을 받은 곳은 가정이었다고 고백했다. 

“가정 내에서부터 기회를 많이 박탈당해요. 예를 들어 꿈이 있으면 ‘너는 장애애인이니까 다른 직업을 가져야 해’, ‘장애인이니까 나서지마’, ‘비장애인이 6시간 공부하면 너는 13시간씩 공부해야 해’, ‘비장애인보다 2배, 3배 노력해야 동등하게 가질 수 있어’라고 하세요. 다른 사람들은 부모가 안쓰러운 마음에 그런다고 하지만 이런 식으로 많은 기회를 박탈당해요. 차별이죠.”

보준씨도 마찬가지였다. 그가 다니던 서울대학교 병원 인근에는 마로니에공원이 있다. 지금은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로 한산해졌지만 당시에는 길거리에서 많은 예술가들이 공연을 펼쳤다. 어느 날 중학생 보준씨는 마로니에공원에서 우연히 비보이 댄스팀 공연을 보게 됐다. 무대 위에서 공연하는 사람이 되길 꿈꿨던 그는 그 순간 ‘나도 이 세계에 빠져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보준씨는 댄서의 꿈을 키우며 혼자 열심히 춤을 익혔다.

춤은 집에서만 시간을 보내는 내성적이던 그를 밖으로 끌어냈다. 학교에 보준씨가 춤을 잘 춘다는 소문이 나며 주위에 친구들도 생겼다. 춤은 그의 삶을 완전히 뒤바꿨다.

보준씨는 단순히 춤을 좋아하는 수준이 아니었다. 고등학교에 올라가서는 비보잉 대회에 참가에 입상까지 거머쥘 만큼 재능도 있었다. 19세, 진로선택을 앞두고 그는 부모님께 댄서가 되고 싶다고 말했지만, 돌아오는 반응은 얼음장처럼 차디찼다.

“장애가 있는 아이들은 집에서 꿈을 정해줘요. 저는 무대에서 공연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지만 아버지 반대가 심했습니다. 예술 학교를 간다고 해서 인정해줄 사람이 있겠느냐, 왜 의미 없는 꿈을 갖고 상처받으려 하느냐고요. 아버지는 차라리 요리사 자격증을 따서 주방 일을 해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하시더라고요. 주방에서 일하면 마스크 쓰고 요리하면 되니까 고객응대 할 일도 없다고요.”

아버지의 말대로 안면장애인에게 세상은 밥 벌어 먹고 사는 일조차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 보준씨는 취업을 위해 수십개의 이력서를 지원했지만 번번히 얼굴 때문에 퇴짜를 맞았다. 그나마 취업이 된 곳에서도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면치 못했다.

“구직이 정말 어려워요. 요즘 누구나 취업이 힘들다고 하잖아요. 비장애인도 힘들다는데, 장애인은 어떻겠어요. 이력서에 반명함 사진 붙여 내잖아요. 사진만 봐도 얼굴이 도드라지니까 서류에서 탈락하는 경우가 많아요. 사람을 상대하지 않는 공장이나 모두 기피하는 험한 일은 좀 했어요. 그런데 그 안에서도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임금을 제대로 안 주는 등의 차별을 받아요. 남들 다 하는 서비스업은 한 번도 못해봤어요. 요즘엔 장애인 의무고용이 있잖아요. 그래도 안면장애인이나 중증장애인 혜택을 못 받고 있어요. 법적으로 보장되면 뭐하나요, 고용주 마음인걸요. 고객을 응대해야 하는 일이라면 안면장애나 중증장애인처럼 장애가 겉으로 많이 드러나는 사람은 피하고 싶은 거겠죠.”

ⓒ심보준씨 페이스북
ⓒ심보준씨 페이스북

20대 청춘에 이러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데 신물이 난 보준씨는 다시 자신의 꿈을 위해 달리기로 했다. 노래에도 소실이 있던 보준씨는 가수로, 뮤지컬 배우로의 꿈을 키우기 시작했다. 하지만 외모가 더욱 중요한 조직인 공연계의 진입장벽도 너무나 높았다. 간혹 “장애인 역할 있으면 그 때 부를게”라고 하지만 사실 한국에선 장애인 역할도 비장애인인 연기하는 일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기약을 알 수 없는 말이다.

장애가 있음에도 늘 밝은 그의 모습에 사람들은 보준씨가 장애를 받아들이고 잘 살아가는 줄만 안다. 하지만 그는 매일매일 장애가 원망스럽다.

“아침에 눈을 뜰 때, 자기 전에도 장애가 원망스러워요. 눈 밑에 작은 뾰루지 한 개만 나도 하루 종일 신경 쓰이잖아요. 근데 큰 혹을 평생 달고 다닌다고 생각해보세요. 사람들은 착각을 해요. 제가 웃고 사니까 장애를 잊고 받아들인 줄 알아요. 평생 이렇게 살았으니 그럴 거라고 생각하나 봐요. 하지만 저는 거울을 볼 때, 오디션을 볼 때 마다 ‘얼굴만 아니었으면’이라고 생각해요. 다만 나이가 들면서 표현하는 방식이 바뀌는 것뿐이죠. 젊었을 때는 매일 술 마시고 목숨을 끊으려는 생각도 하고 많이 힘들었어요.”

마음 같아선 인생의 걸림돌 같은 혈관종을 확 떼어내고 싶지만 그럴 수도 없다. 얼굴에는 뇌와 턱, 귀, 눈 등 인간의 주요 신체부위와 관련된 신경이 많이 연결돼 있을 뿐만 아니라 종양을 제거하는 과정에서 과도한 출혈과 피부 이식 등 많은 위험부담이 뒤따른다. 때문에 선뜻 나서서 수술하겠다는 의사를 찾기는 쉽지 않다. 뿐만 아니라 안면장애는 기능적 손상 보다는 시각적인 어려움이 더 크기에 목숨까지 걸고 제거술을 받겠다는 사람도 많지 않다. 게다가 보준씨의 혹은 진행성이기 때문에 세심한 관리가 필요하다.

“성형외과, 치과, 안과, 이비인후과 등 안 다니는 병원이 없어요. 종합병원이에요. 진행성 종양이라 자꾸자꾸 자라기 때문에 혈관종 주변 기관과 관련된 병원은 다닐 수밖에 없어요. 지금 혹 있는 쪽 후각은 잃은 상태에요. 고칠 수 있으면 좋겠지만 희귀병이다 보니 약도 없고 병원비는 2배에요. 공단에서 지원해주는 병원비로는 한계가 있어요. 주사 한대 맞는데도 100만원씩 들어요.”

정부와 민간에서는 새로운 장애등급 판정 기준에 따라 안면장애 5급에 등록한 장애인을 대상으로 연령, 소득 수준 등 여건에 따라 △연금과 일자리 등 소득지원 △의료비 및 보장구 등 의료지원 △주택개조와 자동차 표지 지원 등 50여개의 복지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러한 혜택이 있어도 누리기는 쉽지 않다.

“대표적으로 연금에 대해 말씀 드리면, 지금은 장애인 등급을 따로 나누지 않고 경증과 중증으로 나뉘잖아요. 안면장애는 경증에 속하는데, 경증장애인은 연금혜택을 받기 쉽지 않아요. 장애인 연금을 받으려면 소득이나 재산이 얼마 있는지 확인하고, 연금 시작 전에 받은 장애등급 판정도 다시 받아야 해요. 근데 요즘 장애판정 받기가 많이 까다로워졌어요. 장애 커트라인이었는데 연금 받겠다고 혹시 재심사 받았다가 자격을 잃을까봐 두려움이 커 포기하는 경우도 있죠. 실제 사회복지사도 아슬아슬한 경우에는 만류하는 경우가 많아요.”

ⓒ심보준씨 유튜브 캡처
ⓒ심보준씨 유튜브 캡처

안면장애 하나만으로도 사는 데 너무나 많은 제약이 따르건만, 보준씨는 또 한번 시련을 맞았다.

지난해 10월 25일 부산으로 출장을 간 보준씨는 식당에서 식사를 하던 중 갑작스럽게 발작을 일으켰다. 그날의 기억은 없다. 다만 주변 사람들 말에 의하면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부들부들 떨다 쓰러지는 등 2시간에 걸친 길고 긴 발작이 이어졌다.

코로나19로 가뜩이나 응급실 진료가 어려운 시기로 여러 차례 진료를 거부당하다, 다행히 모 대학병원에서 받아준 덕에 격리변동에서 진료 받을 수 있다. 보준씨는 5분 동안 심정지가 오는 위험천만한 순간까지 갔다고 한다. 생사를 넘나드는 위험한 고비를 견디고 보준씨는 3일 만에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병원에서는 뇌전증이라는 진단을 내렸다. ‘간질’ 이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진 뇌전증도 만성질환이자 내부장애로 인정가능한 질환이다. 뇌전증 발작을 유발할 수 있는 원인 인자, 예를 들어 전해질 불균형, 산-염기 이상, 요독증, 알코올 금단현상, 심한 수면박탈상태 등 발작을 일으킬만한 신체적 이상이 없음에도 뇌전증 발작이 반복적으로(24시간 이상의 간격을 두고 2회 이상) 발생하는 질환이다.

뇌전증이 보준씨에게 남긴 부작용은 너무나 컸다. 

“심장이 멈추면 온몸에 혈액이 제대로 공급되지 않아요. 그러면 시신경이 마르기도 한다더라고요. 저는 왼쪽 시력은 완전히 잃었고, 오른쪽 눈는 사람이 4겹으로 보일 정도로 저시력 상태입니다. 약을 먹고 있지만 손이 좀 떨리고, 경증 틱장애도 보이고 있어요. 멍때리는 시간도 많아지고, 인지능력도 좀 떨어졌어요. 내가 무슨 말을 했지 생각 안 날 때가 많아요.”

뇌전증으로 진단을 받은 환자의 70% 정도는 항경련제를 일정기간 적절히 복용하면 발작을 막을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30% 정도는 약을 먹어도 발작을 막을 수 없어, 사회나 일상생활에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 ‘난치성 뇌전증’으로 진단해 장애를 인정한다.

보준씨는 다행히도 70% 안에 속에 약을 먹고 있다. 하지만 치료가 가능하다는 이유로 장애를 인정받지 못한 보준씨는 약값을 온전히 자부담으로 해결 중이다. 병원에 갈 때마다 10여만원 씩 들어가는 약값이 주는 부담도 적지 않다.

“외국에서는 암이나 당뇨환자도 장애등록을 해줘요. 장애로 인한 기능적 제한이 아닌 환경적 제한을 본다는 거죠. WHO(세계보건기구)에서도 장애의 포커스를 접근성, 진입장벽 등 환경적 제한을 통해 장애 범주를 넓게 봐야 한다고 말해요. 선진국 가운데 우리나라가 장애 등급 수가 가장 적다고 해요. 장애 인구수가 많은데도 불구하고요. 호주, 스위스, 미국 등은 장애 범주를 넓게 보기 때문에 장애 등급 수가 많다고 해요. 사람들이 많이 착각하는 게 국민들이 낸 세금으로 장애인들이 많은 혜택을 누리고 생각해요. 사실은 그렇지도 않은데 말이죠.”

장애인식개선 강의 중인 심보준씨 ⓒ투데이신문
장애인식개선 강의 중인 심보준씨 ⓒ투데이신문

보준씨는 생활하는 데 큰 불편함이 없는 경증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장애인 복지 혜택을 온전히 수혜할 수 없다. 신체적 기능엔 큰 문제가 없어 남들과 마찬가지로 사회활동을 하고 싶지만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늘 배제되곤 한다. 장애인으로도, 비장애인으로도 살아갈 수 없는 이도저도 아닌 삶이 그에게 남은 것은 차별로 인한 상처뿐이다.

보준씨는 장애가 원망스럽지 않다고 말하는 건 거짓말이라고 했다. 다만 장애가 원망스럽게 만든 건 본인 스스로가 아닌 세상 탓임을 분명히 했다. 그의 얼굴에 생긴 종양이 그저 누구나 몸 어딘가 하나쯤 가지고 있는 점 정도로 생각하는데 지나지 않았다면 그의 삶은 지금과는 사뭇 달랐을지도 모른다. 

보준씨가 바라는 건 단 하나, 다름을 그저 다름으로만 바라보는 세상이다. 

“이 말을 꼭 하고 싶었어요. 제가 장애가 있는 게 운 나쁘고 불쌍한 게 아니에요. 장애를 원망하게 만든 세상에 살아야 한다는 게 운 나쁘고 불쌍한 거죠.” 

◇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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