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임CI·헤리티지·디스커버리 등 4개 펀드서 피해
금융시장 전반적으로 문제…“피해자들만 피눈물“
투자자 “판매사, ‘고객의 돈’ 우습게 여기고 있어”

ⓒ투데이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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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권 안팎으로 사모펀드와 관련한 미스터리한 사건이 지속되고 있다. 지난해 10월 라임펀드 환매 중단을 시작으로 올해 6월 옵티머스펀드 등 사모펀드의 잇단 환매 중단이 비슷한 패턴으로 반복되고 있는 것. 사모펀드 환매 중단으로 펀드 운용사들과 관련한 사기 정황은 서서히 드러나고 있고, 판매사들은 운용사에게 속은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 투자자들의 전 재산은 공중분해됐다. 최근 국정감사에선 사모펀드가 연일 도마 위에 오르고 있지만 정작 피해 투자자들은 구제받지 못한 채 금융 사기 피해의 사각지대로 내몰리고 있다. 이에 <투데이신문>은 사모펀드 사태의 문제점을 들여다보기 위해 다양한 피해 투자자들의 목소리를 직접 들어봤다.

【투데이신문 이세미 기자】 사모펀드 사태가 정치권과 검찰게이트 의혹으로 번져가고 있는 가운데 라임(1조6000억원)과 옵티머스(5000억원) 펀드에서만 2조원이 넘는 피해규모가 발생한 것으로 파악됐다. 그 외 젠투, 디스커버리, 헤리티지, 로얄클래스, 피델리스, 더 플랫폼 펀드 등의 금액까지 합치면 이번 사모펀드 사태 피해규모는 총 5조6000억원에 육박한다.

28일 국민의힘 유의동 의원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6년부터 올해 8월 말까지 은행과 증권사가 판매한 금융투자상품 문제로 인해 피해자에게 선지급했거나 지급할 예정인 보상금액이 총 1조666억원인 것으로 파악됐다. 이중 은행은 4615억원, 증권사는 6051억원이다.

이는 앞서 금융당국이 사모펀드 판매사인 증권사와 은행들에게 강한 압박을 가하며 피해자 구제에 힘쓸 것을 당부하자 판매사들이 피해자들을 위한 선지급 방안을 마련한 결과다.

그러나 정작 피해 투자자들은 사모펀드 사태가 발생한지 이미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금융당국과 판매사들이 여전히 똑같은 말과 핑계만 댈 뿐 피해자 구제에 대해선 진척된 사항이 미미하다고 주장한다.   

판매사들의 선지급 대처에도 불구하고 투자금 11억원 중 4억원의 돈만 겨우 돌려받을 수 있었던 투자자 C씨(72세)가 대표적인 예다. C씨는 라임CI 펀드, 독일헤리티지DLS, 디스커버리Credit Opportunity, 디스커버리US부동산선순위채권 펀드 등 총 4개의 사모펀드에 11억원을 투자했다가 모두 환매연기를 당했다. 

그는 정치권과 금융당국, 판매사와 운용사의 가열되는 책임공방에 묻혀 소외되버린 사모펀드 피해 투자자들과 함께 외로운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그에겐 아직 돌아오지 않은 생계비 6억6000여 만원이 남아있다.

Q. 가지고 있던 4개의 사모펀드가 모두 환매 중단 됐다. 심정이 어떠한가.

완전히 배신당한 기분이다. 환매 중단된 사실도 기가 막히지만 무엇보다 내가 5년 정도 거래해 온 가입한 사모펀드 중 일부가 내 동의 없이 신한은행이 아닌 신한금융투자에 가입됐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돼  배신감이 크다. 또한 가입 당시에 담당 PB가 사모펀드의 특징을 제대로 설명해 주지 않았던 점도 괘씸하다. 신한은행에서 나름 충성스러운 고객이었던 나를 이렇게 배신할 수 있나.

Q. 4개의 사모펀드에 가입했던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

그저 평생 밤잠 설쳐가며 열심히 일해서 모은 노후자금을 정기예금보다 이자가 더 붙는다는 말에 맡겼을 뿐 특별한 이유는 없다. 나는 평생 주식이나 펀드 등 재테크라는 것을 해본 적이 없다. 현금을 차곡차곡 모아서 지금 살고 있는 집을 마련했고, 나머지는 노후자금으로 사용하려 했다.

신한은행과는 7~8년 정도 거래했고 신한은행 PWM센터는 5년 전에 알았다. 그곳에서 먼저 전화를 해와서 내 자산관리를 해주겠다고 제안했다. 그날 센터를 찾아간 게 후회스럽다.

Q. PB가 무슨 말을 하던가. 가입 당시 상황을 자세하게 말해달라.

신한은행 PWM센터(신한은행·신한금투 복합점포)에서 고객들 통장 내역을 확인해보는 것 같았다. 어느 날 전화가 와서는 내 자산관리를 직접 해주겠다고 하더라. 통장에 목돈이 있어서 ‘이 돈을 어떻게 해야 되나’ 고민하던 차였다.

처음에는 PB가 알려주는 대로 주가연계파생결합증권(ELS)에 투자했다. 아직도 그런 것이 뭔지는 잘 모르지만 나보다 금융지식이 뛰어난 PB말을 듣고 조금씩 목돈을 맡겼다. ELS가 위험등급이 1등급이라는 말에 내키지는 않았지만 담당 PB가 최근 몇 년간의 해외 주식 가격 추이, 세계 경제동향 등을 설명해 주면서 안심시켰고 3년 내에는 거의 손실이 없을 것이라고 했다.

노인의 노후자금인만큼 ‘신중하게 관리해 주겠거니’ 하고 믿었던 것이다. 물론 PB도 이 돈이 무슨 돈인지 잘 알고 있었다.

그렇게 PB를 통해서 꾸준히 자산관리를 받아오다가 지난 2018년에 먼저 독일헤리티지DLS 펀드를 소개받았다. 역시 PB가 좋은 상품이라고 해서 늘 하던 대로 사인을 했다. 그날 3억원을 투자했다.

그리고 이듬해인 2019년 2월에 디스커버리US부동산선순위채권펀드에 3억원, 3월엔 디스커버리Credit Opportunity에 3억원, 4월에는 라임CI 펀드에 2억원을 넣었다. 총 11억원이다.

PB는 내게 이 4개의 상품의 상품설명서를 보여주며 재무상태가 우수한 시행사, 운용사라고 설명했다. 무엇보다 100% 보험 가입이 된 상품으로 매우 안전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다 환매 중단됐다. 은행이 이렇게 허술한 상품을 판매할 것이라고 누가 예상을 했겠나.

나중에 은행에서 받은 상품설명서를 한 장 한 장 꼼꼼히 살펴보니 그제서야 알겠더라. 신한은행은 이 상품이 ‘고객에게 도움이 될 만한 상품인가’를 고민하지 않았다.

4개의 사모펀드 관련 자료 ⓒ투데이신문
4개의 사모펀드 관련 자료 ⓒ투데이신문

Q. 어떤 부분에서 고객을 위한 판매가 아니었다고 느꼈나.

사건이 터지고 받은 ‘투자자 정보 분석 결과표’를 보면 나를 △공격적인 투자자 △금융상품지식 높음 △투자 기간 3년 이상 △원금 보존추구 ‘아니오’ 라고 분석돼 있다.

노안이라서 눈도 어둡고 형식적인 절차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PB가 시키는 대로 간단하게 사인한 결과가 이렇게 나온 것이다.

상품설명서도 마찬가지다. 상품설명서에는 정작 중요한 내용들이 다 들어가 있으면서도 금융전문가가 아니면 이해할 수 없겠더라. 그런데 이런 것들을 단 한 번도 설명들은 적이 없으니 황당할 뿐이다.

또한 신한은행PWM센터는 신한금융투자와 같이 운영되는 복합점포라는 사실도 사태가 터지고 나서 알았다. 나는 그저 신한은행 PB의 권유로 독일 헤리티지 펀드에 가입했는데 알고 보니 신한금융투자에 들어가 있었다. 당시 신한금융투자 PB가 상품설명 중 짧게 보충 설명한 것 외에 나에게 해준 게 없었다. 이런 모든 행위들이 정말 고객을 위해 판매한 것인가 반문하게 된다.

Q. 환매 중단 이후 판매사는 피해 투자자 관리를 어떻게 하고 있나.

방치하고 있다. 현재 어떤 상황이고, 앞으로 이 문제를 어떻게 대처해나갈 것인지에 대한 안내가 없다. PB에게 물어봐도 답변을 못한다. 심지어 라임 사태도 내가 2019년 12월 말 쯤 뉴스를 보고 알았다. 그때까지 투자자들에게 한 마디도 없었던 것이다.

당시 PB는 환매 중단된 펀드는 다른 상품이기 때문에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했다. 이후에도 이 사모펀드 사태에 대한 정보제공이나 투자자 관리를 하지 않았다. 내가 수차례 문의했지만 ‘노력하고 있다‘ 라고 말 할 뿐이다.

결국 라임CI 펀드도 환매 중단되지 않았나.

판매사가 발행사와 운용사의 감독 권한이나 책임이 없다는 것을 악용해 막대한 판매 수수료를 챙긴 꼴이다. 고객들만 피눈물을 흘리고 있다.

Q. 피해자 모임에서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도움이 되나.

나는 문제가 생기면 정면 돌파하는 성격이다. 절대로 가만히 앉아서 누군가가 해결해 주기만을 바라지 않는다. 그래서 내가 가입한 사모펀드가 줄줄이 환매 연기되는 것을 보고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것저것 알아보니 이미 피해자 모임이 활성화돼 있어서 카페나 오픈채팅방 등에 참여했다. 매일 릴레이 시위를 이어가는 사람들도 있고, 정기적으로 모여 다 같이 시위를 하기도 한다. 체력적으로 힘든 것보다 정신적으로 힘든 게 더 괴롭다. 피해자들이 참 많은데 대부분 비슷한 처지다. 나 혼자만의 싸움이 아니라는 사실만으로도 힘이 된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어떤 것이라도 해서 적극적으로 내 생명과도 같은 돈을 찾아낼 것이다.

Q. 판매사가 피해자 구제를 계속 외면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이라 생각하나.

고객의 돈으로 움직이는 회사들이 정작 중요한 시기에 고객을 외면하고 있는 현실이 아이러니하다.

금융시장이 전반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 같다. 이쯤 되니 ‘우리의 노후자금이 위험성이 큰 펀드에 투자된다는 사실을 PB들은 알고 있었을까’라는 의문이 생기더라. 아마 PB들도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렇다면 규제를 완화한 정부와 금융당국, 허위사실을 설명한 판매사가 다 같이 피해자를 구제해야 하는 게 맞지 않는가. 그런데 지금 운용사, 판매사, 금융당국 등 자기들끼리 책임공방을 벌이면서 (자신들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데만 급급하다. 사모펀드 규제를 완화할 때 그들은 과연 ‘이런 피해를 예상하지 못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피해자들이 너무 오랫동안 기다려 주고 있다. 하루하루 애가 탄다. 금융사 CEO들이 한 달에 버는 임금, 우리 피해자들은 몇 년에 걸쳐 혹은 평생 동안 모은 돈이다. 그 돈들을 우습게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검찰청과 금융당국에 제출한 C씨의 탄원서 ⓒ투데이신문
검찰청과 금융당국에 제출한 C씨의 탄원서 ⓒ투데이신문

Q. 가족들의 반응은 어떠한가.

아내에겐 펀드에 투자했고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로 인해 해외 유동성 문제로 회수가 늦어지고 있다고 했다. 아내는 상황을 잘 모르고 있다. 자식들에겐 말도 안 꺼냈다.

아이들이 이미 가정을 꾸렸고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상황인데 걱정을 얹어 주고 싶지 않다. 내가 했으니 내가 책임지는 게 맞다. 여생을 자식들에게 손 안 벌리고 살려고 모은 돈인데 그 돈을 잃었다고 어떻게 말하겠나.

Q. 혼자 감당하기엔 큰 액수 같다. 가장 힘든 부분이 무엇인가.

돈을 잃었다는 사실은 말도 못 할 정도로 괴롭고, 무엇보다 믿고 의지했던 은행에게 배신당하고 무시당했다는 게 가장 힘들다.

신한은행은 지금까지 피해자를 위해 움직이지 않았다. 오죽하면 피해자들이 유튜브를 보고 정보를 공유하겠나.

먹고살기 위해 돈 버느라 금융 공부를 놓친 게 한이다. 내가 신한은행에 꽤 충성스러운 고객이었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속일 수 있나.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충격이 크다. 안개 낀 깜깜한 밤길을 걸어가고 있는 느낌이다.

Q. 개인적으로 꿈꿨던 노년의 삶은 어떠했나.

너무 어렵게 한 세월을 살았기 때문에 은퇴하고 나선 편안하게 살고 싶었다. 모았던 돈으로 자식들에게 손 벌리지 않고 의료비로 쓰고, 생활비도 충당하고, 손주들에게 용돈도 주는 것 그게 다였다. 그래서 그 돈을 반드시 찾아내는 게 내 목표다.

50년 가까이 가족을 지키는 가장으로 살았기 때문에 나름 내실이 단단하다. 이 정도 일로 무너질 수 없다. 반드시 돌려받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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